[기자수첩]'주택'으로 인정 못 받는 '실버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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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주택을 취재하던 과정에서 들었던 주택업계 관계자의 발언은 곱씹을 만했다. 그는 노년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실버주택사업이 왜 지지부진한지를 묻자 "국토교통부와 보건복지부 간 칸막이에 막혀 진척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국토부는 복지부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뒷짐만 지고 복지부는 연락이 안 되더라"라고 토로했다.


정책 칸막이의 근본 원인은 꼬여 있는 법체계에 있다. 우리가 흔히 '실버타운' '실버주택'이라 부르는 곳의 공식 명칭은 '노인복지주택'이다. 이름은 '주택'이지만 정작 주택은 아니다. 노인복지법상 '노유자(노인·어린이) 시설'로 분류되면서 주택법을 일부 준용하는 어정쩡한 형태를 띠고 있다. 시설 특성에 맞춰 법을 선별적으로 적용하라는 모호한 규정은 행정 현장의 혼란을 자초한다. 똑같은 노인복지주택임에도 지방자치단체 해석에 따라 발코니 확장이 허용되기도, 불허되기도 한다. 주택법과 건축법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법적 모순은 시장 양극화라는 부작용도 낳았다. 사업성을 극대화하려는 민간의 초고급 실버주택과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로 극단화됐다. 노유자시설인 실버주택은 근린상업지역 등 입지가 좋은 곳에 일반 아파트보다 낮은 장벽으로 부지를 확보하면서도 정작 분양가 상한제 등 주택법상 규제는 피해 간다. 기업이 분양가와 임대료를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게 되면서 시장은 자연스럽게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초고가 하이엔드 상품에만 쏠렸다. 그 결과 중산층 고령자가 선택할 수 있는 보급형 모델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공공지원 민간임대인 실버스테이는 2029년에야 첫 입주가 가능한데, 아직 착공도 못 했다.


국토부는 최근 업계 애로사항을 듣는 자리를 선제적으로 마련했다. 보급형 노인주택 모델을 주택법에 넣어서 관리하겠다는 건데, 자발적으로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법적 지위가 주택으로 명확해지면 주택건설사업계획 승인, 주택건설기준, 청약과 공급 제도 등 주택법상 틀을 일관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분양가 상한제나 임대료 관리 등 공공성을 띤 규제가 적용돼 보급형 모델 확산도 용이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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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는 65세 인구가 전체의 21%를 넘어선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실버주택 수요가 급증할 수 있는 잠재력은 일단 갖췄다. 고령층이 원하는 것은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자신이 지불한 비용만큼 합당한 대접을 받으며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다. 노인주택 정책 핵심은 복지라는 시혜적 관점을 넘어 주거권이라는 보편적 권리에 무게를 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처별로 이원화된 업무를 통합 관리할 컨트롤타워를 세우고 정책 추진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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