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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인 척하면 '돼지'



식용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원료돈지(豚脂·돼지기름)가 조리용 식재료로 둔갑해 시장에 유통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엄격히 규정한 산가(기름의 신선도와 산패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 기준을 최대 4배 초과한 제품이 백화점에도 납품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22일 아시아경제 취재와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인천·대구 등 전국 유통업체 최소 5곳에서 원료돈지를 원료가 아닌 식용으로 판매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에서 제품을 유통하는 이들 업체는 식품 유형을 원료돈지로 기재하면서도, 제품 소개에선 조리용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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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드유 열풍 타고…정제 공정 안 거친 '원료'가 식용으로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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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위생법상 원료돈지는 식용돈지의 '원료'로 정의된다. 탈검(불순물 제거)·탈산(자유지방산 제거)·탈색(탁하게 만드는 색소 제거)·탈취(비린내 제거) 등 공정을 거쳐 식용에 적합하도록 정제해야 식용돈지로 유통할 수 있다. 이때 식용돈지는 산가 0.3 이하, 수분 0.3% 이하 등 엄격한 기준이 요구된다. 반면, 정제 전 재료 상태인 원료돈지일 때 산가 기준은 4.0 이하다.


그러나 서울 소재 A업체는 원료돈지를 달걀 프라이나 김치부침개 조리에 넣으라고 권하면서 '맛은 물론 조리 안정성까지 갖췄다'고 소개했다. 서울 B업체는 식용이 맞는지 문의하자 식용돈지라고 허위 안내하면서도 "(정제 여부는) 공장에서 관리하는 내용이라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인천 C업체는 체험단까지 모집해 블로거 리뷰를 게시했고, 대구 D업체는 백화점에 프리미엄 상품으로 유통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구 E업체 역시 요리 활용법을 홍보했다.


취재 결과, 이들 업체에서 판매하는 원료돈지는 모두 경북 소재 공급업체에서 납품된 것으로 파악됐다. 시중에 유통된 원료돈지의 산가는 0.8~1.4 수준이었다. 원료돈지로서 납품했다면 산가 기준(4.0 이하)에 부합하지만, 정제를 안한 데다 산가도 3~4배 초과해 식용 기준에선 벗어났다.
취재 결과, 이들 업체에서 판매하는 원료돈지는 모두 경북 소재 공급업체에서 납품된 것으로 파악됐다. 시중에 유통된 원료돈지의 산가는 0.8~1.4 수준이었다. 원료돈지로서 납품했다면 산가 기준(4.0 이하)에 부합하지만, 정제를 안한 데다 산가도 3~4배 초과해 식용 기준에선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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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업체 측은 원료돈지에 문제가 없는 만큼 식용으로 사용해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업체 관계자는 "산가를 맞추려면 정제 과정에서 여러 물질이 투입되고, 이를 다시 제거하는 과정도 복잡하다"며 "원료돈지는 산가와 수분만 관리하면 돼 오히려 자연스럽고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식약처 "식용 부적절, 규격 위반 조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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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1989년 우지 파동 사건에서 식품업체에 무죄가 선고된 사례를 들기도 했다. 당시 식용우지 산가 기준은 0.3 이하였지만, 검찰은 이 기준을 초과한 '공업용 원료'를 수입했다는 이유로 식품업체 대표를 기소했다. 그러나 업체는 최종적으로 정제를 거쳐 식용 기준에 부합하는 형태로 라면 등 제품 생산에 사용했다는 점을 항변했고, 재판부도 이를 인정했다.


다만 우지 파동은 식용이 아닌 원료 상태의 기름을 수입한 뒤 국내 규정에 맞게 정제를 거쳐 사용했으나, 검찰이 원료 상태에서도 식용에 준하는 기준이 적용됐어야 한다고 봤던 사례다. 정제되지 않은 원료돈지를 식용으로 둔갑시켜 유통하는 것과는 다르다. 식약처 출신 김태민 식품전문 변호사는 "기준 규격을 어겼다면 당연히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식품위생법상 안전 규격을 정한 식품공전은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닌, 유통 과정에서의 안정성을 보장하는지를 따지는 기준이다. 정제되지 않은 유지는 자연 그대로의 식품이 아니라 효소와 미생물이 남아 유통 과정에서 산패 위험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게 과학적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주요 대학의 식품공학 분야 교수는 "법적으로 기준을 정해놓은 건 해로운 물질이 나올 만한 개연성이 있는지를 살피기 위한 것"이라며 "산가가 높다고 해서 그 자체로 부패를 뜻하진 않지만, 고온 등 주변 환경이 열악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정제되지 않은 원료돈지는 식용으로 적절하지 않다"며 "원료돈지를 식용으로 유통한 사실이 확인되면 현행법상 기준 규격 위반으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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