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안 미로 특별전④]파격의 미로에 빠지다
부서진 주전자·오래된 식물뿌리…이질적 소재의 조각작품 눈길
표현 양식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 보여주며 조각계 인습에 도전
"내가 들면 그냥 돌이지만, 미로가 들면 예술품" 동료 미술가의 평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부서진 주전자, 오래된 식물뿌리, 닳을 대로 닳은 셀룰로이드 인형. 호안 미로의 조각 소재들이다. 이질적인 잡동사니를 모아놓은 오브제에 혼을 불어넣었다. 그의 조각은 회화만큼 유명하지 않다. 하지만 재료와 표현양식에 있어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며 조각계의 인습에 도전했다. 2006년 경기도미술관에서 미로 전시회를 기획한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42)은 "콜라주처럼 소재를 붙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깎는 의미에 그쳤던 조각의 개념을 크게 넓혔다"고 했다.
새로운 접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로는 열여덟 살이던 1911년 몬트로익 농장에서 신경쇠약을 치료했다. 산과 들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항상 땅에 떨어진 돌이나 나뭇가지를 집어 가져갔다. 미로의 노년까지 이어진 습관에 대해 시각 예술가이자 '호안 미로'의 저자 롤랜드 펜로즈는 "미로의 스튜디오 구석에는 녹슨 쇳조각, 구부러진 철사, 뼈, 부서진 전구, 뿔, 농기구, 금속조각 등이 가득 차 있었다"며 "늘 다양한 조합을 시도하는데, 돌연 잡동사니 더미에서 매력적인 해결책을 알아낸 듯 불가사의하면서도 설득력 있고 개성 있는 입체상을 구성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건강을 회복한 미로는 바르셀로나에서 프란시스크 갈리에게 미술을 배웠다. 수업은 특별했다. 학생들을 산으로 데려가 "머리 둘레에 여러 개의 눈으로 된 왕관을 쓰라"고 했다. 교실에서는 눈을 가리고 양손으로 사물을 만진 뒤 촉각으로 인식하고 감지한 바를 드로잉하게 했다. 형태에 대한 감각과 해석에 초점을 둔 교육이었던 셈. 미로의 친구이자 미술가인 호안 프라트스는 "내가 돌을 하나 집어 들면 그냥 돌이지만, 미로가 집어 들면 작품이 된다"고 했다.
미로는 193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조각 작품을 만들었다. 초기 대표작으로는 '남성과 여성(1931년)', '시적 오브제(1936년)', '일몰의 오브제(1938년)' 등이 있다. 나뭇가지, 쇠사슬, 박제 앵무새, 중절모, 셀룰로이드 물고기, 실크 스타킹 등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물체를 붙인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색은 청동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1968년 만든 제목없는 작품은 조각 세 개로 이뤄졌다. 아래쪽 두 부분은 수직으로 세운 불규칙한 타원형 점토판으로, 각각 발모양 자국이 났다. 그 위에 위치한 사각 타일에는 커다란 둥근 눈에 의심스런 표정을 띤 얼굴이 새겨졌다. 발은 손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중앙의 텅 빈 공간을 네모형 얼굴을 가진 신사의 몸체로 보면 이를 감싸는 외투로도 볼 수 있다. 기이한 혼합 같지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만큼 통일성을 갖췄다.
주제는 대부분 회화에서 그린 음양의 세계, 여성, 새 등이었다. 시적 상징의 세계를 통해 내면을 표현했고, 상징성을 갖는 형태들로 이를 기호화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묘사와 시적 심상을 결합시켜 환상적인 세계를 열었다. 회화와의 융합을 시도한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미로가 회화에서 많이 썼던 원색에 입체적 효과를 부여해 시각과 촉각을 동시에 제공했다. 그는 점토와 다른 소재를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모성에 대한 기념비(1962년)'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통의 뚜껑처럼 납작하고 둥근 목제 몸통에 매우 긴 도제(흙을 구워서 만든 도자기) 목과 두상이 솟아올라 있다. 소재의 급격한 변화는 얼핏 불균형해 보이지만 이내 불가사의한 변신을 받아들이고 참여하게 한다. 흔히 사용되지 않던 소재를 결합해 이룬 이런 작품들은 손에 넣은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이용하는 미로 능력의 산물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