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윤 인턴기자] "태조는 장화왕후의 집안이 미천하므로 임신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돗자리에 사정했으나 왕후가 즉시 이를 자신의 몸속에 넣었다. 마침내 왕후는 임신하고 아들을 낳았다"
태조 왕건의 큰아들 '왕무'의 출생에 관한 비화를 실은 내용으로, 조선 세종의 명으로 편찬돼 1451년에 완성된 고려 시대 역사서 '고려사'에 서술된 내용이다.
이 서술과 관련해 역사저널 패널들은 "점잖은 조선 학자들이 저런 표현을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시대를 통일하고 고려를 세웠지만, 이는 지방 호족들의 세력을 등에 업고 이룬 결과였다.
왕무는 훗날 왕건의 뒤를 이어 고려 2대 왕 혜종으로 등극하지만, 미천한 외가의 세력으로 재위 2년 만에 반란이 일어나 목숨을 잃게 된다.
이종윤 인턴기자 yaguba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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