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AD]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낱말의 습격]파르헤시아(74)

최종수정 2014.06.20 06:37 기사입력 2014.06.20 06:37

댓글쓰기

낱말의 습격

낱말의 습격


미셀 푸코가 지난 세기 온세계 먹물들을 매료시킨 작업의 종합판으로 내놓고 있는 연구는 파르헤시아에 관한 집요한 해석이다. 파르헤시아는 직접 민주주의의 시대로 불리던 그리스에서 쓰던 말이다. 푸코가 이 말을 관 속에서 꺼내 그 먼지들을 분석하고 그 낱말의 순수한 뼈대에 조심스럽게 고증학적 붓질을 하는 까닭은 뭘까. 저 파르헤시아야 말로 자유 민주주의의 핵심이며 그 낱말이 사라져간 역사를 분석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어떤 비극을 성찰하고 비판하는데 아주 유용한 작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파르헤시아. 푸코는 그의 얇은 책 '두려움 없는 발언(Fearless Speech)'에서 이 말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의(unvarnished)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푸코는 이 낱말의 유래를 찾아내고 그것이 유리피데스의 비극에 쓰인 용례와 그리스의 민주주의적 기관에서 파르헤시아가 어떻게 활용되었는가를 살핀다. 그가 찾고자 하는 건 그 낱말이 어떤 게임을 거쳐서 사라지게 되었나 하는 점이다.

파르헤시아는 혼자서 말하기(수사학)와 둘이서 말하기(변증법)의 원리라기 보다는 이 둘 사이의 어떤 중요한 공간, 즉 삼자가 끼어있는 발언 공간을 상정한다. 좀 어렵다. 삼자는 어떤 '꼰대'다. 내가 말을 하면 크게 화낼 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면 분위기이거나 어떤 규정이거나 관습이다. 즉 내가 이 말을 하면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을 감수하고 뭔가 말을 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 위험한 상황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욕망을 억누르게 한다. 그런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진공의 공간을 꿈꾸는 이상적 발언 공간이 바로 파르헤시아다. 일반적으로 비평은 파르헤시아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푸코가 주목하는 것은 아주 다양한 영역에서의 파르헤시아다. 예를 들면 종교적 지도자가 왕에게 하는 충고적 예언, 궁전의 어릿광대가 하는 농담, 이슬람 사회에서의 살만 루시디의 '악마의 시'에 이르기까지 발언을 둘러싼 두려움의 역사는 푸코의 눈길 앞에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가 이 문제를 물고늘어지는 까닭은 그것이 지적인 영역 뿐 아니라 우리 일상에서 중요한 인권이며 발언 환경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과 발언 속에는 얼마만큼의 파르헤시아를 억압하는 무엇이 숨어들어와 있는가. 우리가 말할 때 이데올로기는 우리의 혀를 어느 정도로 붙드는가. 어떤 권력이 우리의 말을 고치게 하고 다른 말로 바꾸게 하는가.

이 책은 '당신이 내게 반론하는 그 주장을 지켜주기 위해서 내 목숨까지 바칠 용의가 있다'고 말하던 노엄 촘스키의 신념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어떤 발언을 할 때 의식하는 것들의 세목을 분석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억압의 틀과 구조를 찾아내는 작업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푸코는 통찰의 틈을 열어준다. 발언을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푸코의 관점처럼 보다 교묘해지고 우회적으로 바뀌었지만 결코 약화된 것은 아니다. 상대의 입을 봉쇄하는 권력과 사회 시스템이야 말로, 이 땅의 민주주의적이고 자유로운 토론 문화를 원천 봉쇄해온 주적이다. 술자리에서도 구술하는 자(dictator), 즉 윗사람의 얘기를 반론없이 계속 들어야 하는 문화가 아닌가. 푸코는 그 한국판 술자리에 끼어들어 파르헤시아를 얘기한다. '새파란 쫄따구' 푸코의 말. 당신 생각과 다릅니다. 나도 얘기 좀 할 수 있습니까.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