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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나홀로 다방(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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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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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다방.
왜 그런 썰렁한 우스개를 지어냈을까.
너무나 인간적인 행위를 하는 장소에 관한
쑥스러움이 담긴 완곡어법 중의 하나이리라.
측간(厠間) 혹은 뒷간이란 말이
민망한 옛사람들은 근심풀이 장소(解憂所)란
말을 지어냈다. 변소(便所)라는 직설법에
심기가 불편해진 요즘 사람들은
화장실이란 기묘한 말을 지어냈다.
세상에! 화장실이라니?
이건 은유도 대유도 직유도 환유도 아닌
언어의 오용일 뿐이다. 내 몸의 일부를
비우는 그 장소에서 내가 언제 화장을
한 적이 있었던가? 화장이란 살갗 위에
어떤 덧칠을 하여 몸뚱이의 형태적 약점들을
가리고 미점들을 부각시키는 작업일 진데
뒷일의 어디에 그런 작업과 유사한
부분이 있었던가? 가끔 누이들이 뒷일의
사이사이에 얼굴에 뭔가를 찍어바를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의지하여 그런 고상 괴상한
이름을 데려온 것일까? 어쨌든 그 얄궂은
호칭은 점잖은 사람들의 마음에 쏙 들었던지
얼마 안가 정직하고 드라이한 <변소>를
제치고 지배적인 브랜드네임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처음엔 뒷일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던 그 호칭에서마저
이젠 생리적인 구린내가 풍기기 시작한다.
아무리 화장 아니라 분칠을 해놨어도
언어가 어떤 사물과 견고하게 결합하기 시작하면
사물의 특징이 언어에 옮아와 버린다는 증거이리라.
이젠 화장실이 변소보다는 약간 더 깨끗할 지 모른다는
심정적인 청결도 이외에는 어떤 매력도 담지하지
못하게 된 상황이다. 찻집에서 앞에 앉은 여인이
일어서면서 "나 화장실 다녀 올께요"라고 말하는 것은
더 이뻐 보이기 위해 화장팩을 몇번 두드리고 오겠다는
말로 절대 들리지 않는다. 생리적 다급함이 느껴질 뿐이다.
화장실은 이제 여인의 부끄러움을 감춰주지 못하는
노골적인 직설법으로 옮겨와 버렸다.

더이상의 명사는 개발되지 않았다.
손을 좀 씻고 올께요 라던가, 잠깐 실례할께요 라던가
잠깐 다녀올께요 라는 말로 행위를 위장하거나
장소를 얼버무리는 서술적 방식이 유행하는 상황이다.
어쩌면 화장실이란 표현이 등장할 때 만큼
기발하고 감쪽같은 명사를 찾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낯선 문자로 듬성듬성한 낱말의 망사를 차린,
WC나 세면장과 잘 구별이 되지 않는
워시룸, 혹은 왠지 장난감가게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토일렛 따위는
그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육향(肉香)을 희석시킬 수도 있겠으나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심미감을 자극하는 정도의 기능은
갖추지 못한 게 사실이다.
나홀로다방이란 표현은 이런 궁핍한 언어의
틈바구니에서 새나온 낱말의 사생아같은 존재다.
<나홀로>라는 덧말이 화장실의 정황을
긴박하고 절실하게 집어내고 있다는 점을
높이 살 만하다.
인간의 생리적 고독을 화사하게 표현해낸
어법이 자못 의미심장한 철학적 자극마저
주는 듯 하다.
아무리 사이좋고 금슬좋은 관계라도
화장실을 함께 가줄 수는 없는 노릇 하닌가.
누구나 혼자 가는 자리.태어나자마자 걸음 몇 발짝
따박따박 떼놓은 뒤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던 어느 종교의 원조선생님의
치열한 자기인식과도 닮아있으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결국은 나홀로
이렇듯 몸비우는 순간의 지리한 연장전같은
상황만 펼쳐질 것을 암시하는 묵시론을
뭉게뭉게 피워내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뒤에 붙은 <다방>이란 말은 또 뭐람?
다방이란 차를 마시는 곳인데,
그 '응가시술소'의 어디에 차 한잔의 분위기가
있단 말인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며 잔끝에 갖다댄 입술에서
느껴지는 신열(辛熱)을 즐기는
차도(茶道)의 어느 구석에
밑동네 냄새가 느껴진단 말인가?

다방에는 또한 초창기 자본주의의
선교사같은 분위기가 있다.

몇 도시를 굴러왔을 어느 레지의
인생이력서들과 퇴폐적인 징후들,
찐하게 빨아들이는 담배, 떡칠한 화장,
구두숟가락 만한 손톱에 붉게 칠한 매니큐어,
디룩디룩 살찐 허벅지를 가리다가 만
미니스커트와 가슴과 가슴 사이에
음험하게 패인 굴곡들.
입속에 든 껌과 침이 뒤섞여
딱,딱 기묘한 구개음이 터져나오는
입술은 얼마나 기묘한 슬픔이었던가.
그것은 거북등처럼 균열한 립스틱 아래
저홀로 살아 똬리 틀고있는 실뱀 한마리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다방이다. 시덥잖은 농담 따먹기와
실업자들과 성냥곽들과 오늘의 운세를 숨겨놓은
운명의 껌통을 빙빙 돌리는 재수생들
곁에서 빌붙어먹는 커피로 매상을
추가하는 레지들이 있는 풍경.
그 풍경에서 출발한 이 나라의 다방들은
지금은 도시의 바깥으로 바깥으로
더욱 밀려나가 초라한 건물들 아래에
어둑한 지하 쯤에 자리잡고
이쑤시개질로 여념없는 배불뚝이 사내들의
오후 한때를 야한 옛날식 농담으로
때우는 곳으로 되었다. 거긴 너무 커서 징그러운
비늘을 가진 잉어 몇 마리가 생기없이
헤엄치고 있는 어항이 놓여있고
때묻은 계단과 그 가운데쯤에
자물통 달린 문을 가진 화장실이 있다.
그 다방이다.

화장실과 다방은 이렇게 만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의미로 수렴될 수 있다는
증거는 아니다. 세상엔 그러나 이렇게
불가능한 조합들이라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보면
그럴 듯한 해설과 주석과 평문들이 받쳐주니
고마운 노릇이다. 쿠데타마저도 법리적으로
합리화할 줄 아는 왕성한 상상력이
화장실과 다방 쯤을 못 꿰어맞추랴?

아까 얼핏 그린 풍경에서 짐작하였을 수도
있을 터이지만, 다방이란 그저 차만 훌쩍 마시고
툭툭 털고 일어서는 그런 토포스가 아니다.
적어도 근대화로 삽질하던 한국에선 말이다.
실업자와 재수생이 왜 거기에 등장하던가?
바로 죽치기 좋은 자리라는 점 때문이 아닌가?
일이천원만 투자하면 아늑한 자리에 앉아
오랫 동안 시간을 죽일 수 있는 곳.
바깥은 건설하고 삽질하는 역군들의
아우성과 땀으로 난리통이지만
다방문을 밀고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참으로 한가하고 귀족적이고
할일없고 나른한 시간 속으로 틈입한다.
망중한, 악다구니 속의 천국.
차 한잔은 그저 그 시간을 사들이는
대가이자 핑계일 뿐, 다방의 진짜 자리매김은
모든 긴장과 심각으로부터의 도피,
숨찬 삶에 대한 위로와 무력감에의 탐닉이다.

보라. 우리가 뒷일을 보러갈 때의 급한 사정과,
그 일이 시작되고 난 뒤의 느긋함을.
오죽하면 누러갈 적 마음 다르고
눈 뒤 마음 다르다는 옛말이 나왔을꼬.
화장실 문을 열기 전까지의 긴박과 괴로움의 크기는
이윽고 화장실에 앉은 뒤의 평안과 즐거움의 사이즈를
역설해주는 장치다. 다방의 위로와
나홀로다방의 위로는 그래서 깊숙히 닮아있다.
뿐만인가. 당신이 안에서 사색을 할 동안
밖에선 누군가가 사색(死色)이 되어 있다는 농담처럼
화장실 안과 밖의 현저한 차이는, 다방 밖과 안의
각박함과 느긋함을
또렷하게 대비해주는 데에도 아주 유효하다.

차를 마시는 건
과정을 즐기는 행위다.
들뜬 마음을 내려놓는 느린 동작들이다.
들뜬 마음이나 들뜬 창자나
내려놓는 건 똑같이
인간을 겸허하게 하고 부드럽게 하고
아늑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몸이 비어가고 있는 순간
우린 정신이 맑아진다. 또렷한 생각들이
뭉쳐진다. 주변에서 엄습해오는 냄새들이
그 생각들을 추호도 방해하는 법이 없다. 오히려
그 향기들은 정신을 맑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다방을 두둔하자. 치마 위쪽 몇 센티의
비밀을 금방 다 드러낼 듯 팔랑거리는 저
음흉한 상술마저, 다방의 여유로운 일탈을
돕는 호재라고 말이다. 그 영양가없는 농담들은
지적인 윤활유일 수도 있다.

나홀로다방은 당분간 죽치고 앉아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방의 기능을 빼박는다. 뭔가를 기다린다.
내면에서 쏟아져내리는 것들, 한때는
내가 간절히 원해서 쏟아부었던 것들을
폐기하는 현장에서 나는 내가 다시
쓰임새있는 빈항아리가 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세상의 패자로 쫓겨온 다방의
객들도 자신의 정신과 몸을 덮치고 있는
피곤과 우울과 불안이 사라져가기를
가만히 기다린다. 두꺼운 외투를 벗어두고,
성냥개비를 쌓아올리며, 식은 커피를
훌쩍이며 그들은 시간이 지나가기 만을 기다린다.

나홀로다방이란 말 속엔 지난 날
우리의 삶에 차지했던 다방의 위상이랄까
그런 가치를 말해준다. 화장실을 들르듯
하루에 한번쯤은 들러야 하는,
꼭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인사를 교환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더라도,
고단하고 남루한 일상을 버전업해주는
기분전환을 위해, 우린 다방에 들렀었다.
사랑은 다방의 음악을 통해 양생되었고
슬픔은 푹신한 쿠션의자 속에 파묻었다.
화장실이 다방의 비유를 얻은 것은
이 산뜻한 낙원의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냥 다방이 아닌, 나홀로다방이다.
차를 가져다주고 옆자리에 함께 죽쳐앉아
쉼없이 농담을 주고받던 레지도
옆옆자리의 골초도 허공을 떠돌던
푸른 먼지와 빛도 모두 사라져버린
밀폐된 공간, 상업도 차 향기도 관계도 사라져버린
나홀로 만의 공간. 때로 화장실에 앉는 것은
관 속처럼 고독하다. 쾅쾅쾅 문을 치며
나는 나의 밖으로 나가고 싶다.
관짝을 메고 등지고 또 껴안고
내 속을 비운다. 육신이 떨어져나가는
날의 개운함이 이럴까? 깜깜한 폐소에서
희망과 추억에 가위눌리는 시간,
나홀로다방은 외로운 자기에의 몰입이다.
벗은 하체에서 서늘한 죽음이 느껴지는
에고로의 환원, 고독함을 골고루 나눠갖는
태아같은 평등이다.

나홀로다방은 인간의 퀴퀴한 구차함은
가렸을지 몰라도 홀로 앉은 그 먹먹한
풍경들의 비애는 훨씬 리얼하게 돋을새김해버렸다.
허겁지겁 여기 들어온 순간,
그는 살이에서의 진정한 실업자,
지독한 생애의 미행으로부터 쫓겨들어온,
도망자인지 모른다.
지금껏 악다구니로 고집해왔던 것들의
와해, 와르르 무너지는 자리
끄응 하고 뭔가를 내려놓는 여기,
평생 나홀로다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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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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