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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웰빙을 아는가(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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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 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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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행어가 된 웰빙(well being). 이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 질문에, 서헌순이라는 분의 시('偶詠')로 대답하는 것은 어떨지요.
山窓盡日抱書眠 산창진일포서면
石鼎猶留煮茗烟 석정유유자명연

산의 창가에서 하루 내내 책을 안고 잠을 잤다
돌솥엔 아직도 차 달인 내음이 남아 있구나

자연 속에서 책을 벗삼고 차를 즐기는 저 여유로움을 웰빙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 행위에는 실제로 돈이 드는 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저 삶의 어떤 점이 옛사람들의 마음에 들었을까요. 그 '어떤 점'이야 말로 오늘날의 '웰빙'을 설명하는 열쇠일 겁니다. 그렇다면 웰빙은, 한때의 유행이거나 요즘에 와서야 추구하게된 삶의 태도가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꿈꾸고 실천해온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저 시에서 우러나오는 것은 내면적 만족감입니다. 웰빙은 삶의 무게중심을 재편하여 '진짜 좋은 삶'으로 바꾸자는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쉽게 말해서 웰빙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만, 이때 '잘'이라는 말에 대한 의견차이가 워낙 커서, 저렇게 규정해놔도 사실은 뭔지 한 눈에 들어오진 않습니다. 행복이란 말이 있습니다. 웰빙은 바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어떻게 살 것이냐 라고 물었을 때, 그저 생존의 수준이 아니라,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웰빙의 가치관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행복이냐는 질문이 다시 생겨납니다.


나는 나이가 많을 수록 더 '많이'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얼마나 소중한 경험을 많이 했느냐는, 영성(靈性)의 나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소중한 경험은 바로 '행복'을 만들어내는 비결들입니다. 브래드 피트가 나온 '티벳에서의 7년'이란 영화를 보면 극장을 짓기 위해 대공사를 벌이고 있던 사람들이, 지렁이가 나오지 공사를 중단하고 정성스럽게 지렁이를 옮겨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지렁이가 전생의 어머니였다고 믿습니다. 그들에게는 극장보다도 지렁이의 안녕이 더 귀하다고 생각하였을 겁니다. 무엇이 행복인가는 사람마다 같을 수 없습니다. 다만 행복의 원리가 같을 뿐입니다.

행복의 원리는 행복을 찾는 눈을 외부로부터 내부로 돌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웰빙이란 바로 그 시선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외부는 이미 창조되어 있는 세계이며, 내부는 무한한 창조가 가능한 잠재력의 세계라 할 만합니다. 삶이라는 스토리를 바꾸기 위해서 인간은 외부 세상을 바꾸겠다고 덤벼듭니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외부는 스크린이고 내부는 영사기입니다. 영사기에 필름을 갈아끼워야 이야기가 바뀌는 것이지, 스크린을 바꿔서 될 일이 아닙니다. 이는 명상전문가인 이균형씨의 말입니다.


티벳의 유명한 피리 연주자인 나왕 케촉은 우리나라에도 몇 번 들러서 '영혼의 선율'을 들려주고 간 사람입니다. 그의 연주를 들은 가수 존 바에즈는 이렇게 시를 씁니다.

해질 녘 피리를 연주하며
오래도록 한 동굴 속에
고요히 앉아 있네

이 글이 사라지기 전에
그리고 저녁 안개로 바뀌기 전에
염소떼의 소리가 들린다
염소떼들은 새김질을 멈추고
피리소리를 듣기 위해 고개를 든다

저 염소들의 평화로운 시선이 바로 웰빙의 본령이 아닐까 합니다. 책을 읽으며 차 한 잔의 여유를 갖는 일, 고요한 숨쉬기와 바라보기, 필요보다 좀 적은 양의 음식을 아주 천천히 먹고 마시는 일, 욕망의 관성에서 깨어나 내면을 풍요로움을 채우는 일. 그런 게 웰빙이겠지요. 고급 명품을 자기 삶의 둘레에 잔뜩 진열하는 것은, 웰빙이 아니라 마음의 허기를 더 넓혀놓는 일이겠지요. 진정한 웰빙 상품은 자아를 깊숙히 내면으로 영구히 데려오는 결심이자 에너지여야 합니다. 염소의 저 평화로운 한 때를 삶의 중심에다 옮겨놓는 일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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