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요리가의 당찬 선언 "한식은 인류의 오래된 미래다"
'수운잡방' 재현 나선 젊은 요리사 신효섭 쉐프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한식은 인류에게 아주 '오래된 미래'다. 지구상 어느 한편에선 인스턴트식품이나 과도한 육식에 찌들어 다이어트하느라 혈안이다. 다른 현편에선 수억명 이상이 굶주린다. 그 점이지대에 한식이 있다. 한식이 대안적인 이유는 가장 자연친화적이며 인간적 속성을 지녔다는데 있다. "한 젊은 요리 연구가가 한식을 얘기한다. 왠지 낯설다. 한식과 젊은 요리사라는 이미지가 쉽게 중첩되지는 않는다. 맛있는 된장찌게를 보면 할머니 손맛이 연상되 듯 '한식' 하면 나이 지긋한 어른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또 젊은 사람의 한식은 '퓨전'적이거나 옛 맛의 잔영을 찾는 정도로 인식된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는 사뭇 진지하다.
"조상들은 장맛이 좋아야 집안이 흥한다고 했다. 집안의 흥망과 안녕을 결정할 만큼 깊은 맛이라니 ? 간장은 '찌고, 빻고, 두드리고, 말리고, 재우고, 띄우고, 익히고, 담그고, 쪼이고, 다리'면서 한세대(자식이 태어나 장가갈 때까지)를 기다려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맛에 도달한다. 간장을 만드는 과정은 지고지순할 정도다."
그는 한식의 깊이를 '간장'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설명한다.
""부녀야 메주 쓸 일이 남았도다. 익게 삶고 매우 찧어 띄워서 재워두소"(농가월령가) 음력 십일월. 부녀들은 메주를 만들어 한달반 가량 띄운다.메주는 곰팡이가 슬어 굼굼한 냄새가 돌 정도로 익힌다. 그런 다음 음력 이삼월 '손 없는 날'을 골라 장을 담근다. 조선 영조 시절 빙허각 이씨는 "해 돋기전에 담그면 벌레가 없고, 그믐날 얼굴을 북으로 두고 장을 담그면 벌레가 없고 장독을 태세(太歲) 방향을 두면 가시 안 생긴다"(규합총서)고 이른다. 메주 하나에 소금물 둘이면 진간장이 되고, 넷이면 묽은 간장이 된다. 소금은 반드시 작년에 구한 여름 소금을 써야한다. 소금을 쓸 때는 소쿠리에 받쳐 몇번이고 물을 부어 간수를 빼고, 남은 소금으로 소금물을 만든다.담궈진 장 위에는 숯이며 마른 고추, 대추를 얹어 잡 벌레가 들지 않게 한다. 낮에는 장독 뚜껑을 열어 말리고 비 오는 날이나 밤에는 장독을 닫는다. 맑게 익은 장은 떠내어 다른 장독에 옮겼다가 육십일 지나 용수로 받친 다음 다린다. 다린 간장은 맑게 익혀 까만색을 띠어야 비로소 양념으로 쓰인다. 그를 두고 "아기 배서 담은 장, 그 아기 결혼할 때 국수 만다"고 했다."
최근 젊은 요리사는 한국의 맛을 재현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겠다고 도전장을 냈다. 신효섭 쉐프(32, 서울예술 전문학교 호텔조리학과 교수)다. 그는 한 가계가 500여년 이상 이어온 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중이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칼을 잡았다. 이른바 '고졸' 출신이다. 요즘에야 고졸 출신이 새롭게 조명받기도 하지만 당시엔 학교 대신 현장을 선택하는 걸 무모하게 여기던 때다. 입문은 이태리 레스토랑 '모르포 갈리'를 통해서다. 요리사가 다 그렇듯 그도 식재료 다듬는 것부터 시작했다. 친구들이 대학입시에 여념이 없는 시간, 양파를 까느라 눈물을 흘려가며 요리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에게 있어 요리사는 '애초부터 정해져 있던 길'이었다. 맞벌이 부모 덕에 어릴 때부터 혼자 요리를 만들어 먹는게 너무도 자연스웠다. 그렇게 '지지고 ,볶고, 데치고, 삶는' 작업속에서 서서히 자신의 길을 발견했다.
그는 이태리 레스토랑, CJ 그룹 내 요리개발 담당 등을 거쳐 요리연구가, 집필가, 한식 전도사로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맛의 근원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의문을 떨치지 못 했다. 그런 그에게 '수운잡방'이라는 옛 요리서가 "꼭 필요한 때 운명처럼..." 다가왔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일반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한국적 맛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해온 것이 계기가 됐다.
수운잡방을 만나던 날 그는 온 몸이 떨릴 정도로 전율했다. 그때의 감정을 "흥분에 휩싸였다. 그러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난 젊고, 요리 경력이 짧았다. 처음엔 거절했다. 그러나 주변사람의 의견은 달랐다. 한식의 미래를 위해서는 젊은 감각과 사고가 더해져야한다는 것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렇게 그는 수운잡방에 매료됐다.
'수운잡방'은 조선 중기 안동 예안의 선비 김유(金綏, 1481~1552)가 쓴 전통 조리서다. 김유가 직접 칼을 잡고 요리를 했는 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책에는 술과 음식 등 100여 종의 조리법이 담겨 있다. '수운잡방'은 허균의 '도문대작'보다 70여년, 1670년경에 안동장씨(安東張氏)가 한글로 지은 '음식디미방' 보다 100년 이상 앞서 최고의 요리서로 알려져 있다. 간간이 옛 우리말로 표기한 식품 이름도 나온다. 여러 술의 제조법과 김치 담그는 법, 다과와 탕류의 조리법, 채소 재배법도 실려 있다.
수운'은 격조를 지닌 음식문화를 뜻하는 말로 '역경'에 '구름 위 하늘나라에서는 먹고 마시게 하며 잔치와 풍류로 군자를 대접한다(雲上于天需君子以飮食宴樂)'라고 한 것에서 따왔다. '잡방(雜方)'이란 갖가지 방법을 뜻한다. 그러므로 '수운잡방'이란 풍류를 아는 사람들에 걸맞은 요리법을 가리킨다.
현재 김유 종가는 수운잡방의 요리 중 28종을 재현했다. 여기서 신쉐프는 영계를 간장에 조린 '전계아법', 꿩ㆍ새우ㆍ묵 등을 육수에 끓인 '삼새어탕' 등 11종을 현대적 레시피로 부활시켰다.
그는 "개암, 형계(향신료로 허브의일종), 향유유 등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거나 알 수 없는 양념류가 여럿 포함돼 있어 옛 맛을 정확히 구현했다고는 할 수 없다"며 "김유종가와 다른 문헌 등을 참고해 맛을 찾아가고, 또 현대적 레시피로 개량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수운잡방의 음식은 조리법에 비해 맛이 아주 깨끗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안동 김유종가가 복원에 중점을 둔다면 나는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에 힘 쏟고 있다. 수운잡방의 요리를 복원, 현대화하려면 최소한 3년 정도는 걸릴 전망이다. 전통과 관련, 복원이냐 현대화해야하느냐하는 고민이 내게도 있다. 말하자면 전통음식을 외국인에게도 친숙한 맛으로 개량, 표준화하는 것이 우리가 할 작업인지 하는 대목이 제일 고민거리다. 이게 우리 음식이라고 알려주고, 그들 입맛대로 스스로 현지화하라고 하는 것이 맞느냐하는거다. 일단 내 작업은 종가와 협력, 우리 맛의 깊이를 발굴하는데 있다.그런 다음에야 더 발전적 형태가 나올 것이다."
'완전한 복원이 이상적인 것이냐'하는 의문은 맛의 근원을 찾는 그에게 여전히 숙제다. 수운잡방에 나오는 양념 중 형계(향신료로 허브의일종)와 향유유는 지금도 어떤 양념인 지 아무도 모른다. 오랫동안 전통음식을 추구해온 연구가는 물론 김유종가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금 재현한 음식은 그저 옛 맛의 잔영은 아닌 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그는 이렇게 찾아낸 요리를 매주 엠넷TV 등을 통해 일본 등 해외에 알리고 있다.
"분명한 건 우리 음식이 대안적 식생활일 수 있다는 점이다. 설탕과 인스턴트에 찌든 현대인에게 우리 음식은 새로운 영감을 준다. 한국 전통음식의 특성은 발효와 곰삭음에 있다. 자연재료에 발효가 더해진 음식은 인류에게 식품적 구원이다. 천천히 익어가는 과정마다 맛과 품격이 다르다. 그 숙성된 맛이란 물과 공기, 사람, 자연 등 여러 요소가 다 합치돼서 만들어진다. 그 속에는 분명 사람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자연에 대한 이해가 담겼다. 우리 음식으로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아야하는 이유이면서 더 많은 복원과 해석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러나 '수운잡방'에 빠져 있으면서도 접근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술이다. 수운잡방에도 60여종의 술이 나온다. 김유 종가도 송순주 등 3종만 복원한 상태다. 그는 요리 재현을 마치는대로 술에 접근해볼 계획이다.
"수운 잡방의 재현은 답습에 의미를 둘 수는 없다. 오염된 자연성으로부터 회복되는 과정을 찾는게 중요하다. 잃어버린 맛과 가치를 찾아 나섬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새로 전망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출발해야한다. 물론 수운잡방의 음식이 모든 해답은 아니다. 다만 우리 음식을 통해 자연성을 회복해 가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추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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