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결과의 한 측면은 '정치'에 대한 '신앙'의 승리였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보낸 대중의 지지와 환호는 마치 종교적 열광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그의 승리는 상당 부분 그에 대한 대중들의 '신앙고백'의 결과였다. 51.6%라는 득표율은 박정희-박근혜 부녀로 이어지는 이 종교가 빚어낸 신비 체험의 한 계시이자 마침표와도 같은 상징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그는 지상에 있으면서도 천상의 존재와도 같았다. 그는 정치인이면서도 정치의 안이 아닌 밖에 있는 듯했으며, 현실 정치에 존재하되 부존재하는 이였다. 그는 '밖'에서 '안'을 지배하는 주재자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늘 보면서도 진실로 보지 못했다. 한국 정치를 지난 5년간 사실상 지배해 온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의 당선은 이제 그가 더 이상 천상의 구름 위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음을, 아니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이제 지상으로 내려올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자신을 감싸왔던 신비의 베일을 스스로 벗고, 그 베일 뒤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그 자신이 분명히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 그는 이제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하며, '왕궁'에서 저잣거리로 나와야 하며, 1970년대에서 21세기의 현재로 부지런히 달려와야 한다.
지상의 최고 권좌에 오른 그가 서야 할 출발점, 그건 무엇보다 아버지의 성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아버지의 은총'을 받아 지금의 자리에 오른 그는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내려' 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성령(聖靈)'으로부터 단호하게 벗어나야 한다.
아버지의 자리 대신에 부디 600년 전의 한 군주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가 곧 들어가게 될 청와대, 오랫동안 아버지가 주인이었으며, 그 자신이 성장했던 청와대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있는 경복궁의 사정전(思政殿)에 오래전에 앉아 고뇌에 빠졌던 한 인물을 생각해보기 바란다. 청와대를 그 뒤편으로 내다볼 수 있는 곳,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에서 백성을 생각하며 눈물의 나날을 보낸 그 '눈물의 군주'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경복궁이 창건된 후 사실상 첫 임금이었을 그 임금, 세종을 부디 늘 떠올리기 바란다. '밥'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희생시켜도 좋다고 여겼던 누군가와 달리, 민본(民本)과 민생을 함께 성취했던 이, 아니 민본이야말로 민생의 뿌리이며 민본이 있기에 민생이 있음을 잊지 않았던 이를 늘 생각하기 바란다.
그럼으로써 민주주의 이전의 민주주의자였으며 근대 이전의 근대인이었으며 과거 속의 미래였던 세종을 부디 자신의 모범으로 삼기 바란다.
그의 주위로 몰려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저 높은 곳으로 더욱 드높이려 할 때, 왕이 되어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자 했으며 그러기에 오히려 높여졌던 세종을 생각하기 바란다.
어느 철학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과 인물은 두 번 반복되는데,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소극(笑劇)으로 끝난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이 진정으로 아버지를 잇고자 한다면 그건 아버지의 계승이 아닌 오히려 그의 극복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럴 때 그는 아버지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정치적 역할을 소극으로 끝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제우스가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올림포스의 지배자가 되었듯이 아버지를 지울 때 그는 스스로 그 자신의 삶을 살 수가 있을 것이며, '정치적 성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박정희'가 아닌 '박근혜'가 되는 길이며, 70년대가 아닌 21세기의 지도자가 되는 길이며, 비극을 피하고 소극을 피하는 길이다. 그것이 그 자신, 그리고 한국사회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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