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회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경제민주화 논쟁 속 법정구속에 총수 재판 바로미터’ 시각
자녀에 이어 형제에 ‘발목… 옥중경영과 주요 현안 중단위기
법원이 김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함에 따라 그동안 대기업그룹 총수의 범죄에 대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오던 사법부의 관행이 깨졌다. 잇따른 총수들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실로 가정한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전격 구속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서경환)는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등)로 불구속 기소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과 벌금 51억 원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법원이 김 회장에게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함에 따라 그동안 대기업그룹 총수의 범죄에 대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오던 사법부의 관행이 깨진 것이다. 이 판결은 ‘경제민주화 논쟁’과 함께 대기업 총수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을 비난하는 여론 속에 나온 것으로 향후 법원의 대기업 총수 재판에 대한 바로미터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김 회장은 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위장계열사를 부당 지원하고 계열사 보유 주식을 누나(김영혜 전 제일화재해상보험 이사회 의장)에게 싸게 양도해 각각 2833억원, 141억원의 손해를 끼쳤으며 차명 주식거래로 15억원의 양도소득세를 포탈했다”며 김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팀장으로 근무하며 김 회장의 지시를 이행한 혐의로 기소된 홍동옥 여천NCC 대표이사에게 징역 4년과 벌금 10억원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김관수 대표이사에게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모두 법정 구속했다.
판결이 끝나자 재판을 지켜보던 한화 관계자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법정구속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특히 검찰이 제기한 혐의 가운데 절반 가까이는 무죄로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법정 구속으로 이어진데 대해 현장의 한화 관계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화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의 공동정범 등에 대한 유죄 인정에 대해서는 법률적 다툼의 소지가 상당히 있어 항소를 통해 적극 소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재계, 법정구속에 ‘촉각’
재계는 김승연 회장의 법정구속을 이례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 회장에 대한 검찰 구형이 워낙 높았기 때문에 대체로 실형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지만 법정구속이 이뤄지자 “올 것이 왔다”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경제도 어려운데 기업인을 법정 구속한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짧은 논평만 내고 입을 굳게 닫았다.
SK, 금호석유화학, 태광 등 오너 일가가 재판을 받고 있는 그룹들은 판결문 내용을 챙겨 보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 회장 재판에 앞서 법원이 지난 2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하고, 모친인 이선애 전 태광산업 상무를 법정 구속해 대기업 오너 비리를 강력히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터라 더이상 법원의 배려를 기대하긴 어렵지 않겠냐는 분위기도 강했다.
“유죄 부분에 대해서는 응당한 책임을 지는 게 맞다”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룹총수의 경제범죄 처벌을 강화하고 집행유예를 금지하는 내용의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발의한 최근 정치권의 분위기가 판결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시했다.
현재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계열사 자금을 유용해 사적인 투자를 한 혐의로 기소돼 검찰의 구형을 앞두고 있다. 금호석유화학도 이번 판결과 선을 그으며 최대한 무죄를 입증할 계획이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2009년 대우건설이 헐값으로 매각될 것이라는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회삿돈 300억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항소심 판결을 앞둔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1심에서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징역 4년 6개월에 벌금 20억원을 선고받았다.
최금암 기획실장 체제로 ‘옥중경영’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이 법정 구속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화는 일단 그룹 경영기획실과 5명의 부회장을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기로 했다. 최금암 경영기획실장이 이끄는 경영기획실과 김현중 한화건설 부회장, 홍기준 한화케미칼 부회장, 신은철 대한생명 부회장 등 부회장단 중심의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최 경영기획실장은 김 회장의 구속에도 불구하고 태양광사업과 이라크 신도시 프로젝트 등 미래성장 전략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최 실장은 “우리는 작금의 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동요 없이 그룹 및 각사의 미래성장 전략을 계획대로 추진해나갈 것임을 밝힌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재 그룹이 진행 중인 주요 신성장 사업들은 그룹이 한 단계 더 도약해나가는 데 있어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시험대”라며 “이에 임직원 여러분은 근무기강을 더욱 강화해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는 가운데 그룹의 주요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오너의 의사 결정이 필요한 주요 사업이 많아 김 회장의 옥중경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1993년 외화를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을 때도 옥중에서 주요 사안을 결정했다.
김 회장의 구속으로 그룹 차원의 대형 사업은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독일 태양광업체인 큐셀의 인수를 추진 중인 한화케미칼은 최종 협상 과정에서 김 회장의 역할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국내 해외건설 수주 중 역대 최대 금액인 80억달러(약 9조1200억원)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의 추가 수주도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화가 수주한 물량(10만 채)은 이라크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100만 채 규모의 신도시 개발 계획의 일부다. 대한생명은 ING 생명의 동남아법인 인수를 추진하고 있지만 김 회장의 구속으로 당분간 협상이 진척되기는 어렵다는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장남 김동관 후계구도 ‘급부상’
김 회장, 전폭적 지지로 사업 맡겨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사진)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의 역할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계에선 김 회장의 구속이 한화그룹 경영 승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하고 있다. 김 실장은 중국에서 한화의 태양광 사업을 주도하고 있었으나 최근 국내에 들어와 머물고 있다.
김 회장의 세 아들 중 유일하게 한화에 입사한 장남 동관(29·한화솔라원 기획실장)씨가 보다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한화에 입사한 김 실장은 그동안 주로 중국에 있으면서 태양광사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김승연 회장이 그동안 그룹의 미래성장동력인 태양광 사업을 김 실장에게 맡기고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것을 감안해 보면, 이번 일을 계기로 김 실장이 경영 전면에 급부상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도 있다.
김 회장의 차남 동원(27)씨는 예일대를 졸업한 후 공연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고, 국가대표 승마선수인 막내아들 동선(23)씨는 미국 다트머스대를 현재 휴학 중이다. 김 회장의 1심판결이 있던 날 장남 동관 씨와 동선 씨는 함께 서부지원에 나와 아버지의 법정구속을 지켜봐야 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