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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쩌다 '비아그라 천국'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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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어쩌다 '비아그라 천국'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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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발기부전치료제가 필요하십니까? 지금 쓰시는 약이 별 효과가 없습니까? 그렇다면 한국으로 오세요!

한국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발기부전치료제 6가지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6개 회사가 작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다보니 말도 탈도 많다. 비아그라가 세상에 나온 지 13년. 이제 관심이 수그러들 때도 됐는데 왜 한국만은 비아그라 뉴스 하나하나에 여전히 '불끈한' 관심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발기부전이 어색하지 않은 사회

최초의 먹는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는 1998년 미국 화이자제약이 개발했고, 한국에서는 1999년 출시됐다.

비아그라가 한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월급 300만원을 받으며 일하는 '사태'에도 비아그라는 일정 부분 기여했다. 1만 5000원짜리 알약 하나면 보약이 필요 없고 한의원은 기나긴 불황에 빠져들었다.
비아그라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것은 다른 제약사들이다. 2003년 시알리스(미국 일라이릴리), 레비트라(독일 바이엘)가 세계 2번째, 3번째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내 상륙했다.

세 회사 모두 세계 굴지의 부자 제약사들이다보니, 마케팅이란 명목으로 엄청난 규모의 돈이 뿌려졌다. 이 질병을 의학적으로 분석하는 '좋은' 방식도 있었지만 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음란물까지 살포하는 사건도 이즈음 발생했다.

결론적으로 발기부전이 더 이상 '숨길 것'이 아니며 고혈압과 같이 일상적인 질병의 하나라고 우리가 인식하게 한 데는 최소한 제약사들의 작전이 먹힌 셈이다.

◆국내 제약사, 발기부전에 목숨 걸다

그러는 사이 국내 제약사들도 이 분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아그라가 개발 막바지에 있던 1997년 한국의 동아쏘시오홀딩스 , 1998년 SK디스커버리 이 발기부전치료제 개발에 착수했다. 8년 뒤 동아제약은 '자이데나' 개발에 성공한다. 세계 4번째 경구용 발기부전치료제다.

하지만 선발주자들은 코웃음을 쳤다. 미국FDA가 허가한 것도 아니고 세계 각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사용경험(임상시험 실적)'을 보유한 것도 아닌 자이데나를 의사와 환자는 외면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환자들은 기존 3개 제품 각각에 '너무 세다', '부작용이 심하다' 등의 불만을 일정 부분 갖고 있었고, 자이데나는 이 틈을 파고 들었다.

전략은 두 가지였다. '한국인의 체질에 잘 맞는 약'이란 점(한국인을 대상으로 임상시험하고 그 결과로 허가를 받았으므로)과 기존 약의 70%에 불과한 가격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자이데나는 레비트라를 가볍게 밀어내고 시알리스까지 위협하는 존재로 성장했다.

◆멈춰버린 성장세, 돌파구는?

2005년 이후 시장은 비아그라-시알리스-자이데나 3강체제로 굳어졌다. 초기 전략을 잘못 짠 레비트라는 사실상 경쟁에서 도태됐다. 그리고 비아그라가 '무(無)'에서 일궈낸 시장은 7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필요한 사람은 다들 한 번씩 먹어봤고, 더 이상 신기한 물건도 아니었다. '호기심에 한 번'도 예전 이야기가 됐다. 시장은 700억원 수준에서 정체됐다.

2006년 SK케미칼은 엠빅스를 출시한다. 하지만 식상해진 시장에서 이는 큰 뉴스가 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온 약 중 가장 좋다"는 회사 측의 애절한 호소에도 이미 고개 숙인 소비자들의 관심은 다시 일어설 줄 몰랐다. JW중외제약 도 지난해 세계 6번째 발기부전치료제 '제피드'를 시장에 내놓았지만, 이런 소식을 아는 것은 업계 관계자들뿐이다.

그렇다고 가만있을 제약사들이 아니다. 신제품이 생명력을 다했을 때 제약사들이 곧잘 쓰는 방법이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조금 비틀어 새 약인 듯 파는 것이다.

제약사들은 100mg, 200mg로 만들어 팔던 약을 쪼개 5mg, 10mg로 만들어놓고 '필요할 때'가 아닌 '매일 먹으면 더 좋다'고 홍보하기 시작했다. 재계의 유명 인사가 이런 방법으로 80대 고령에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도 오버랩 됐다.

어쨌든 이 전략으로 제약사들은 시장을 조금 더 쥐어짜는 데 성공했다. 2011년 다섯 개 제품의 합산 매출액은 1000억원에 근접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1000억원이 일종의 한계점이라고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특히 발기부전이 더 많은 것도 아니므로 한국 인구를 감안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비아그라의 천국인 것은 시장 규모의 문제라기보다는, 판매사가 많고 그로 인한 가격인하 효과, 생산되는 뉴스의 양이 많다는 측면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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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만에 찾아온 또 다른 기회

수술이나 민간요법 등에 의존해오던 '발기부전'이란 질병을 알약 하나로 해결하는 신개념이 등장한 1999년 이후, 인류는 6개의 신약을 개발했고 그 중 3개는 한국인이 만들었다.

다른 다국적제약사들이 왜 추가 제품을 내놓지 못했는지는 불확실하다. 개발력이 없었다기보다는 시기적으로 경쟁력이 없거나, 시장이 추가로 커지지 않을 것이란 판단 때문일 것이다.

반면 신약개발 후진국인 우리나라에서 신약이 3개나 나온 것은, 비아그라라는 약물의 특징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6가지 약은 모두 PDE-5 억제제라는 계열에 속한다. 계열이라 함은 약물이 몸에 들어와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작용으로 효과를 내는가를 규정하는 말이다. 비아그라 출시로 PDE-5 억제 기전이 알려지면서, 다른 화학성분으로 같은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찾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잠잠하던 시장은 2012년 5월을 기점으로 크게 술렁거릴 조짐이 불고 있다. 비아그라의 특허만료 때문이다.

여전히 법적 분쟁 요소가 남아있긴 하지만, CJ 등은 5월 18일 비아그라의 복제약 발매를 선언했다. 그 외 30여개 제약사들도 특허 분쟁 추이를 봐가며 복제약을 내놓을 준비를 마쳤다.

이것은 13년 발기부전치료제 시장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다. 시장은 6개 신약의 각축장에서 '6개 신약과 수십개 복제약'의 경쟁체제로 바뀌는 것이다.

복제약의 장점은 당연히 가격이다. 레드오션이 돼버린 탓에 '획기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시해야 시장 성공이 가능하다고 각 복제약 회사들은 보고 있다. 일각에선 1알에 3000원짜리 비아그라 복제약이 나올 것이라 전망한다.

◆가장 강한 적(敵)은 중국이다!

제약사들이 이 시장에 집착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중국산 불법 복제약이다. 정확한 통계치는 없지만 국내 불법 복제약 시장은 10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이라 한다.

공식 시장규모가 1000억원인데 이를 두 배로 '튀길'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더 좋은 약이 나왔으니 중국산 먹지 마세요'란 전략은 지난 13년간 유효하지 않았으니, 앞으론 '더 싼 약이 있는데 왜 굳이…'라는 메시지가 주를 이룰 전망이다.

또 물과 함께 먹어야 하는 알약의 '그리 크지 않은' 불편함까지 해소해주겠다는 전략도 있다. 필름형으로 혀에 녹여먹거나 과립형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과제도 있다. 사람들이 중국산 제품을 찾는 핵심적인 이유는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모든 발기부전치료제는 전문의약품이며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약국에서 구매해야 한다. 이런 불편함이 해결되지 않는 한 '뒷골목 비아그라'가 사라지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신범수 기자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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