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의미하는 것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논란이 된 수사권을 부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검찰의 실질적인 권한을 축소하는 대신 경찰의 권한을 강화할 여지를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법무부령'으로 남아있을 경우 형사소송법 관련 조항이 검찰 중심의 현재 시스템을 반영하는 선에 그쳤겠지만, '대통령령'으로 넘어가면서 대통령 주관 국무회의의 또다른 주체이자 경찰을 관할하는 행정안전부의 개입 여지가 커졌기 때문이다.
◆수사에서 기소까지 '속도' 붙는다= 경찰 수사를 검찰이 원점으로 되돌리지 못하고 피의자를 곧장 기소하는 지침 등 마련 전망
#. A씨는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집 앞에서 치고 달아난 뺑소니범이 일사천리 기소됐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CCTV에 찍힌 범행차량을 경찰이 잽싸게 찾아내 체포하고 운전자가 혐의를 시인하자 그날 바로 검찰이 기소했다. 입원중인 딸도 한 달은 깁스신세를 져야겠지만 큰 후유증 없이 퇴원할 수 있다 한다. 경찰과 검찰의 신속한 일처리가 고맙기 그지없다. 용의자가 혐의를 시인하고, 이에 관한 직ㆍ간접적 증거가 확보된 경우 검찰은 경찰에서 사건을 송치받는 즉시 기소해야 한다'는 새로운 원칙 덕분에 A씨의 고충은 그나마 줄어들 수 있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 상황이었다면, A씨 사건에 관한 경찰의 수사기록을 검찰이 하나씩 훑어보고, 의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관계자들을 검찰로 불러 처음부터 다시 수사를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찰 단계에서 사실상 수사가 마무리되고, 검찰은 원칙에 따라 기소하는 역할만 수행하게 되면서 A씨는 경찰 따로 검찰 따로 불려다니는 수고를 덜게 됐다.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인 협력수사도 가능=검찰 권한 축소는 경찰 권한 강화라는 도식은 과장
#. 대기업 대표 B씨의 횡령사건을 수사하던 C검사는 B씨의 혐의와 관련이 깊은 별도 사건을 경찰이 내사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C검사는 해당 사건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B씨의 혐의를 보다 쉽게 입증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 경찰에 내사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C검사는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자료에서 B씨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물증을 확보했고 지체없이 그를 재판에 넘겼다. '경찰은 검찰이 진행중인 수사와 관련이 있는 경우라면 내사사건에 관한 정보라도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는 법무부와 행안부의 합의 덕분이었다.
지금까지 경찰 내사사건의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검찰의 요구가 있더라도 수사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 이에 관해서는 오히려 검찰이 경찰에 요구를 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지침이 만들어지면서 검찰이 새로운 권한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된 것은 구체적인 수사범위와 대상을 검ㆍ경이 다시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거치게 한 것"이라면서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논의가 구체적인 '대통령령' 마련을 위해 국무회의에서 다시 재개되는 결과를 빚어낼 것"이라고 해석했다.
하 교수는 또 "이번 개정안의 통과는 수사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개선될 기회이기도 하다"며 "양 측은 원활한 합의를 통해 국민의 편익과 신뢰가 높아질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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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신영무)는 지난 20일 "경찰수사개시권 등 수사권 조정에 관한 고려는 신중히 검토돼야 하며 경찰의 수사능력과 인권보호 의식 제고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끊임없이 불거지는 경찰의 인권탄압 문제 등이 먼저 고쳐져야 경찰에 권한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변협은 또 "경찰의 치안 및 사법기능이 전문화돼야 하며 중앙과 지방경찰 사이의 역할 재정립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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