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지난 6월 8일 간 나오토(管直人)총리는 취임사에서 일본 근대사의 한 무사(사무라이)를 언급했다. 그의 이름은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6~1867). 19세기 에도 막부시대 말기의 인물로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위인으로 꼽힌다. 간 총리는 새 내각을 료마와 사무라이들에 비유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위기에 대처해 나가자”고 말했다. 150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에서 그가 이처럼 일본인들의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 일본 근대화를 이끈 ‘시대의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가 일본 국민들에게 잘 알려진 계기는 1962년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를 통해서다. 그는 막부시대 말기 당대의 손꼽히는 검객이자 서양 근대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선구자였으며 무엇보다도 일본 근대화의 길을 연 국민적 영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당시 최대 지방 세력인 사쓰마 번(薩摩藩)과 조슈 번(長州藩)을 중재해 에도 막부 타도를 위한 동맹을 성사시켰고 이듬해 막부가 메이지(明治) 천황에게 통치권을 넘긴 대정봉환(大政奉還)을 이루었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봉건시대를 종식하고 메이지 유신을 통한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막부 세력의 습격으로 33살의 젊은 나이에 암살당한다.


오늘날 일본인들은 료마가 없었다면 메이지 유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시대의 풍운아로 불리는 그의 드라마틱한 삶도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된 이유 중 하나다.

◆ 위기의 일본, 료마를 주목하다= 요즘 일본에는 사카모토 료마의 열풍이 불고 있다. 료마를 주제로 한 TV드라마만 8개가 제작됐고 료마 ‘마니아’들까지 생겨날 정도다. 유력 정치인과 기업인들도 연설에서 료마를 단골 언급한다.


NHK가 올해 1월부터 드라마 ‘료마전’을 방송하기 시작한 이래 상반기 료마의 출생지인 시코쿠(四國) 남부 고치현(高知縣)를 방문한 관광객들의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1%늘어난 240만명을 기록했다. 료마 ‘붐’으로 창출된 고치현의 경제효과는 409억엔에 이르며 일본은행(BOJ)의 6월 발표자료에 따르면 지역내총생산(GRP)의 1.8%에 달한다.


일본 4위 맥주업체 삿포로맥주는 9월부터 일본 전국에서 ‘오이! 료마’란 이름의 신제품 판매에 들어갔다. 오가와 가쓰히토 삿포로맥주 홍보담당은 “료마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검은색 라벨 한정판 맥주가 48만캔이 팔렸다”며 “올해 가을까지 120만개가 팔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이하츠자동차는 신형 경차 탄토 엑스(Tanto Exe)의 TV광고에 료마로 분장한 모델을 기용했다


◆ ‘내우외환’ 150년 전과 닮은 일본= 이처럼 료마의 인기가 높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현재 일본이 처한 위기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소비자물가가 급락하고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인구의 노령화로 일본 경제의 전망은 어둡다. 엔화 강세로 수출기업이 고전하고 있지만 환율문제의 국제적 해결 논의에서도 일본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영유권 갈등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는 여론이 비등하면서 간 내각의 지지도까지 하락하고 있다.


내각의 ‘실세’로 불리는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은 최근 ‘제 3의 개국’이란 표현을 쓰면서 주목받았다. 그는 1867년 메이지 유신을 제 1의 개국, 패전 후 국가재건을 제 2의 개국이라면 오늘날 일본은 침체와 도약의 갈림길에 선 제 3의 개국 과정에 있다면서 과감한 시장개방을 통한 경제위기 타개를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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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다른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미온적이었던 일본은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 파트너십(TPP)’ 협정에 적극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FTA 등의 체결을 통해 타격을 입게 될 일본 내 농업계 등이 강력히 반발해 진통을 예고하고 있다.


고치현 료마기념박물관의 모리 켄시로 디렉터는 “료마는 일본이 하나로 통일되지 않으면 서양 열강에 맞설 수 없다고 보았다”면서 “오늘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의 상황은 료마의 시대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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