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L";$title="";$txt="";$size="250,129,0";$no="2010062810100289335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최금희양. 그녀는 1983년 함경북도 아오지에서 태어나 인민학교를 마치고 고등중학교 2학년이던 열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탈출했습니다. 그 뒤 4년 동안 죽음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01년 4월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녀는 셋넷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외국어대 중국어과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는 어려웠던 탈북과정을 이렇게 떠올리고 있습니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여름날 무섭게 불어난 물살도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무정한 두만강 물살은 함께 건너는 어머니와 아들의 손을 갈라놓기도 했다.
엄마 손을 잡고 두만강 물을 헤치며 가던중 회오리 물살에 손을 놓고 말았고, 멀리서 들리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둑으로 나와 보니 어머니는 회오리 물살에 마지막 손을 흔들며 가라앉고 있었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소리쳐 통곡을 해도 두만강은 대답도 없이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다."
윤나영양 역시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1988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고등중학교 3년까지 공부했습니다. 2005년 고향을 떠나 베트남을 거쳐 2006년 7월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서울 연희미용고에서 1년간 공부했고, 지금 셋넷학교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또한 어려웠던 순간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날 나는 한국 땅에 발을 내디뎠다. 막상 한국 땅에 도착했을 때의 기억은 아무것도 없다. 기억나는 거라곤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카메라가 엄청 많아서 깜짝 놀랐다는 점이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데 북한에선 타보지 못했던 터라 멀미를 엄청하는 바람에 먹은 것을 다 토하기도 했다.
국정원에 가서 조사를 받는데 내가 이 말을 했는지, 저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헤맸다. 그때 사람들은 나한테 막 소리 지르고 화를 냈다. 심한 말은 “또 북한으로 갈래?”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나는 진짜 보내는 줄 알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며칠간 따로 따로 각방에서 조사를 받고 하나원(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 사무소)으로 들어왔다."
1950년 6월25일의 전쟁.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들이댄 결과는 분단의 아픔과 상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 그런 고통을 가슴에 안고 지내온 지 60년을 넘겼습니다. 인사동의 토포하우스에서 이를 되돌아보는 특별전(기나긴 여정-셋넷학교 사진이야기) 소식을 듣고, 잠시 관람했습니다.
특별전에는 최금희양, 윤나영양을 비롯한 탈북청소년들의 작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돼 있었습니다. 절망을 넘어서, 희망의 나래를 펼 준비를 하고 있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있었고, 땅끝 마을 해남에서 만난 그들의 고향풍경들이 가슴을 찡하게 했습니다.
어둠속에서 뚜벅뚜벅 당당하게 세상속으로 걸어오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값진 소득은 탈북청소년들이 지녔던 마음의 상처, 그렇지만 그들이 우리사회에서 적응해가는 모습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제3의 존재’를 쓴 존 가이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산악인과 남극탐험가, 심해잠수부, 우주비행사,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장 위험했던 순간에 그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는 이 궁금증을 풀기위해 6년간에 걸쳐 문헌조사, 인터뷰 등에 많은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한 가지였습니다. 가장 외로웠던 순간, 가장 힘들었던 때에 자신이 아닌 위대한 어떤 것과의 소통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이들의 생존이 가능했던 것은 미지의 구원자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신 곁에는 당신과 함께 걷고 있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가 이런 자료 수집을 위해 만난 사람 가운데는 에베레스트에서 보이지 않는 동반자에게 비상식량을 건넨 산악인을 비롯해 우주정거장에서 죽은 아버지를 만난 우주비행사, 중국의 오지에서 젊은 시절의 자신과 조우한 프랑스문학가 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가 쓴 글 중에 등장하는 잊혀지지 않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14일 동안 갱도에 매몰돼 있다가 살아남은 사람, 붕괴된 백화점에서 16일 동안 갇혀있다 구조된 생존자의 이야기입니다.
1967년 8월, 미국정신의학저널에는 펜실베이니아의 한 탄광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그 사고로 광부 2명이 100m 깊이의 갱도에 14일 동안 매몰되어 있다가 살아났습니다.
갱도에 갇힌 뒤 그들은 외부와 접촉하지 못했습니다. 빛도 음식도 없었습니다. 14일이 지난 뒤 여러 명 중에서 두 사람이 구조됐습니다. 구조된 뒤 두 광부는 모두 갱도속에서 뭔가를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뒤 그들은 정신과 의사들의 검진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종교적인 성격을 띠는 어떤 존재와의 만남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외부와의 접촉이 끊어져있던 동안의 체험이었습니다. 생존자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요한 23세 교황을 봤습니다. 교황이 나타난 뒤 우리가 구조되리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갱 속에 갇혀있는 동안 신이 나와 함께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한명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여자였는데 그는 생존이 불가능한 힘든 상황에서 구조대와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1995년 7월. 삼풍백화점이 붕괴됐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아동복매장에서 일하던 한 사람은 백화점 건물이 무너지면서 3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는 가운데서도 구조됐습니다.
그는 음식도 없고, 물도 없고, 빛도 없는 엘리베이터 기계실 아래쪽의 작은 공간에 16일이나 갇혀 있었습니다. 그 공간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좁은 곳이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것이라고는 희생자들의 썩어가는 시체와 냄새뿐이었습니다.
심한 탈수 증세로 고통을 겪던 이 젊은 사람은 마침내 잔해더미에서 구조됐습니다.
“정말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에 스님 한 분이 나타났습니다. 스님이 사과를 주셨고, 희망을 잃지 않게 격려했습니다.” 상상속에 나타난 스님이 생존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선(死線)을 넘어 자유 대한민국의 땅을 밟은 탈북자들. 죽음의 순간에서 삶의 빛을 찾은 생존자들. 탈북한 그들에겐 가장 소중하게 여겨온 자유를 찾기 위한 신념과 제3의 존재였습니다. 그런 제3의 존재를 마음에 품고 있었기에 기나긴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탄광의 갇힌 갱도속에서, 붕괴된 건물더미 잔해속에서 빛을 찾아낸 생존자들에게는 교황과 스님의 한마디가 제3의 존재였습니다. 이들은 제3의 존재를 통해 모두 최악의 위기, 극한 상황을 기적으로 변환시켰습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우리도 이제 월급이 1000만원" 역대 최고…'반도...
운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기적이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기적은 행운이 아닌 노력과 신념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길 위에서 다시 길을 물으며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습관, 위기를 기적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참아내는 강한 의지-제3의 존재는 바로 여기에서 나타납니다. 그럼 지금 ‘내안의 제3의 존재’는 무엇일까? 이를 생각하며 다시 7월을 맞을까 합니다.
@include $docRoot.'/uhtml/article_relate.php';?>
[아시아경제 증권방송] - 무료로 종목 상담 받아보세요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권대우 아시아경제신문 회장 president@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