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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경제레터] 검은 대륙의 기사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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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에 흠뻑 젖은 나이지리아 표범들의 질주를 먼동이 트는 순간까지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 했던 대한민국 사람들. 그 짧고도 긴 밤이 다 지나고 검은 얼굴들이 하나 둘 지쳐서 뒹굴 때야 우린 기사회생으로 비로소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A가 B를 반드시 이겨주고, 우리가 이기면 좋겠지만 적어도 비겨야만 올라 갈 수 있다”는 적지에서의 16강 생존조합. 며칠 동안 전전긍긍하던 그 국민적(?)인 공식을 간신히 통과했기에 더욱 소중한 경기로 보입니다. 이 들뜬 기분으로 화기애애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자체가 대한민국의 에너지이죠.
그라운드에서 서로 끌어안고 울먹거리는 젊은 전사들을 보며, 문득 ‘만약에 저들이 한 골을 더 먹고 졌더라면 어찌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몇 달 전에 우연히 읽어보았던 글이 떠올랐습니다.

비교적 젊은 한나라당의 홍정욱 국회의원이 지난 2월25일 홈페이지에 쓴 ‘의정일기’ <나를 위한 도전>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그는 김연아 등 한국 대표선수들이 연일 전하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승전보를 보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건 큰 명예입니다./
그리고 태극기를 가슴에 단 이상 최선을 다 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제 애국애족과 국위선양을 들먹이며 승리를 압박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제가 보고 싶은 것은
원하는 도전을 추구하며 성공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꿈과 열정에 도취된 행복한 젊음 말입니다.”

공감이 가지 않습니까. 우리 국민들이 간밤에 얼마나 태극전사들에게 무조건 승리를 압박했을까요? 뜬 눈으로 지켜보았던 수천만개의 충혈된 눈동자들. 이제 바로 코앞에 16강의 상대로 역대전적에서 4전4패를 했다는 A조 1위의 우루과이란 남미 야수가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기면 또 한번의 질펀한 축제가 벌어지겠지만 지더라도 슬퍼하거나 결코 노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차두리도 그 아버지 차범근도 대를 이어서 애국한 사람으로 기억해 줘야 하겠지요.

아무리 상업주의와 내셔널리즘이 지배해도, 월드컵은 어디까지나 젊은이들이 4년 만에 몸을 던져 불태우는 한때의 축제에 불과합니다. 이번 경기에 20대 초반으로 세대교체를 확실하게 성공시킨 우리 대표팀의 미래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고, 남은 게임마다 이기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맘 편하겠죠.

여전히 나라 안밖에는 만만치 않고 시끄러운 국가 이슈들이 딜레마에 빠져있습니다. 남북긴장 문제, 4대강 추진동력, 국회상임위에서 부결된 천덕꾸러기 세종시, 7·28 보궐선거, 여·야당의 전당대회 등등. 화합할 일 보다는 충돌할 일들만 남았습니다.

한 초선의원은 6·2 지방선거 패배 후의 당내 초선의원 50여명 모임에서 “여당이 너무 많은 일을 벌여놓고 국민생활에 직접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있다. 이제는 정책에도 우선순위를 두고, 국가가 성공하면 개인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의 중진들이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그 다음 문제고.

한마디로 당이 살기 위해서 미리 메시지를 준비하고 젊은 메신저를 키워내야 희망이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의 ‘갈망’은 당이 버릴 것은 과감하게 더 버리고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정치를 하도록 하자는 뜻이죠. 한마디로 “노쇠한 혈관에 젊은 피를 흐르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월드컵 같은 큰 경기에선 아무리 기량이 우수하고 노련한 선수를 보유했더라도, 조직과 융화되게 세대교체를 하지 못하고 적시에 포지션별로 선수교체를 해 주지 않는다면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축구 경기장의 단순한 이 원칙을 우리네 정당들도 벤치마킹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2년마다, 때론 4년마다 한 번씩만 잘해도 기사회생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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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ah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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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우 시사평론가 pdik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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