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의 신세대 눈물 vs 마오의 구세대 눈물
#1. "그 때를 기억하세요. '카타리나 비트' 말입니다. 그땐 그저 꿈이었잖아요. 경기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속으로 엄청 부러워 했었죠. 우리나라는 감히 흉내도 내지 못하는 피겨였으니.."
김연아의 경기가 진행되던 지난달 26일 오후 1시20분. 회사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다른 자리에 앉아 TV를 지켜보던 허름한 차림의 한 손님이 큰 소리로 소리를 쳤다.
#2. 다른 손님이 맞장구를 쳤다. "어찌나 유연하고 부드러운지.. 예술입니다. 아사다 마오는 회전을 더 잘 한다고 하지만 높이가 부족하데요. 높이가 무릎 정도인데 연아는 가슴 높이까지 뛴 다네요. 거기에서 승부가 결판나는 거지요"
#3. "연아가 눈물을 흘리니 나도 눈물이 나네요. 정치인 100명보다 나아요. 이런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주니..." 스포츠 해설가도 아닌데 이렇게 박식할까 할 정도로 이들 손님들의 멘트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4. 또 다른 손님이 말을 이었다. "나도 피겨가 뭔지도 잘 몰랐는데 연아 경기를 보다보니..트리플 러츠, 콤비네이션, 트리플 악셀이 뭐고 허리를 뒤로 깊숙이 숙인 채 멋지게 활주하는 이너바우머가 뭔지를 알게 됐어요. 관심을 갖고 집중을 하다보니 금방 알겠더라구요."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연아의 눈물은 '특별'했다. 못 살고 못 먹고 할 때의 한의 눈물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긍지, 자신감을 갖게 해준 눈물이었다. 누구나 가슴이 뭉클했고, 벅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흘러넘치게 하는 눈물이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아사다 마오도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은 서러움과 분함의 눈물이었다. 자신의 경기에 만족하지 못한 속상함을 눈물로 털어버리고 싶었을까. 연아 경기직후 관중들의 환호를 들은 그녀는 긴장감이 더했을 것이고 이 같은 무거운 중압감을 눈물로 풀어버리고 싶었을 법도 하다. 그녀는 자주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요즘 일본 사람들은 눈물을 자주 흘린다. 도요타 자동차 사장도 울고..
자존심이 구겨지고, 상처를 많이 받게 되면 마음도 여려진다. 때문에 조그만 슬픔에도 눈물을 자주 흘리게 된다. 상대와 자신의 벽을 넘지 못한 안타까움도 섞여 있다.
피겨에 대한 일본의 지원은 가히 전폭적이다. 아사다 마오는 막대한 자본력과 언론 플레이를 동원하는 일본의 힘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성장을 했다.
연아의 승리는 이점에서 더 돋보인다. 그녀는 난방도 안되는 추운 곳에서 훈련을 하다 부상을 입기도 했다. 특히 올림픽을 치르기 한 달 전 스케이트 부츠가 잘 맞지 않아 왼쪽 발목에 통증이 있었지만 이 역시 강인한 의지로 이겨내고 피겨의 여제로 등극했다.
요즘 우리는 단순히 분하고 안타깝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성시백과 이호석이 넘어질 때도, 또다시 성시백이 500m 결승에서 넘어졌어도 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더 자랑스러웠던 것은 남자 쇼트트랙 5000m 계주에서 4위로 달리다 막판 레이스에서 2위로 골인해 은메달을 탄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딴 것 이상으로 흐뭇해하며 세러모니를 펼쳤다는 점이다. 이들은 빙판 위에 태극기를 펼치고 관중들에게 감사의 큰절을 했다. 곽윤기는 시상대에서 '시건방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날 이정수, 이호석, 성시백, 김성일과 함께 계주 경기를 뛴 곽윤기는 시상대에 올라 혼자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 안무를 따라 시건방춤을 선보였다. 손가락으로는 2위 또는 승리를 의미하듯 브이(V)자를 그리기도 했다. 실력자들의 여유였다. 이제 우리 신세대들은 금메달 은메달에 연연하지 않고 게임을 즐길 정도로 성숙해져 있다.
연아는 갈라쇼에서 또다른 메시지를 전달했다. 갈라쇼의 주제인 '감사'의 의미를 함축시킨 연기를 펼친 것. 연기는 부드럽고 아늑했고, 여유가 넘쳤다. 우아함이 극에 달해 황홀하기까지 했다. 여제의 품격있는 몸짓이었다.
아사다 마오와 2004년 첫 대결에서 35점이란 큰 점수차로 뒤진 그녀가 2년뒤 팽팽한 맞수로 등장을 하고 이제는 라이벌이란 표현이 맞지 않는다고 분석까지 나올 정도로 격차를 벌렸다.
그녀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연아의 승리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어머니에게서 고집이라는 독특한 유전자를 받았다고 한다. 뭔가를 한번 시작하면 한곳에 온통 집중해서 이뤄내야 직성을 풀리는 셈이다. 악바리 근성 탓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기술이 나오지 않으면 소리를 질러가면서 울기도 했다고 한다. 지고는 살 수 없다는 강인한 근성의 소유자인 것이다.
한시도 눈에 떼지 못하게 하는 흡입력은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에게서 물려받았다.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이번 경기를 통해 자신의 꿈도 이뤄냈다. 현역 시절 브라이언 오서는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로서 기량을 뽐냈지만 유독 올림픽 금메달만큼은 거머쥐지 못했다.
그들의 노력은 연아를 무뚝뚝하고 수줍은 표정에서 마음먹은 대로 감정을 표현하는 탁월한 예술적 본능의 소유자로 탈바꿈시켰다. 거침없는 담력은 보는 이에게 든든한 여유를 선사한다. 그녀는 담대한 배짱으로 '당대 피겨 여왕은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이 없다'는 동계올림픽 징크스를 보란 듯이 깼다.
연아의 금메달로 인한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 효과는 6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그녀는 특히 우리에게 이렇게 하면 된다는 꿈을 줬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한마음으로 모으는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사람은 자주 감동을 느껴야 한다고 한다. 슬픈 땐 울고, 또한 기쁠 때도 울고.. 마음을 속이지 말고 응어리를 털어내야 한다는 얘기다. 감동을 느낄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감동이 한순간에 그치지 않고 이어지면 열정이 된다.
그녀의 강인함과 고집, 집중력, 그리고 뚜렷한 목표 아래 끊임없이 계속된 훈련, 부모와 코치 등 조력자의 도움이 만들어낸 이번 밴쿠버 신화. 그녀가 우리에게 선사한 열정이 성화처럼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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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섭 기자 songbir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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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섭 기자 songbir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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