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 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요란스러워지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괜스레 마음이 들뜨고, 좋은 사람과 나란히 꼭 붙어서 화려한 조명으로 옷 갈아 입은 나무 아래를 걷고 싶은 12월입니다.
나의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래된 12월은 대여섯살 무렵 조명으로 휘황찬란한 중앙통 거리를 식구들과 걸었던 날입니다. 물론 ‘도나쓰’도 먹고 ‘쇼빵’도 먹었을 테지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초등학교 때에는 담임 선생님이 크리스마스 실을 나누어 주셨고, 국군장병에게 위문편지 쓰기, 위문품·치약 학교에 갖고가기가 이 계절의 연중 행사였습니다.
이십여년 전의 일입니다. 프랑스에서 우연히 여름 휴가 때 네덜란드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정년 퇴임 후에 혼자 여유롭게 한 달 동안 네덜란드에서 출발하여 스페인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크리스마스 때 한국에 가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그냥 파리에 있을 거라고 했더니 에인트호번에 있는 할머니 집으로 우리를 초대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주소는 주고받았지만 그냥 하는 얘기라 생각하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12월 초에 편지가 왔습니다.
초대장이었습니다. 집 주소며 3층에 우리가 잘 방을 준비하는데 어른 침대, 아이 침대를 함께 넣으니 좁더라도 이해해 달라, 침대가 간이로 만들어서 불편할 거다, 라벤거 향의 초를 준비하는데 향을 좋아하느냐, 아들 식구들도 와서 이틀동안 2층에서 자는데 불편하지는 않는지 등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쓴 너무나 친절한 초대의 편지에 놀랐습니다.
할머니 댁으로 가기 전 몹시 긴장했습니다. 처음으로 외국인 가족과 일주일을 보내게 되니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해야할지, 파티도 한다는데 무엇을 준비해 가야할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결혼한 아들 부부는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왔고, 큰 딸은 남자친구와 함께, 작은 딸은 혼자 와서 크리스마스 전날 가족 파티를 열었습니다. 모두 번쩍이는 블라우스에 깔끔하게 차려입고 은식기로 식사하는 모습에 가족 파티도 이렇게 근사하게 격식을 갖추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른들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어색하게 있지만 아이들은 금방 친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딸이 할머니의 손자에게 ‘오빠’라고 불렀더니, 그 아이는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우리 딸을 ‘오빠’라고 부르며 숨바꼭질하며 온 집을 뛰어다닙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아침 식사를 할 때 ‘오늘은 이 할머니의 할머니를 생각하며 식사할까?’ 하시더니 할머니의 할머니가 쓰시던 식탁보와 찻잔을 꺼내었습니다. 금이 가고 이가 빠진 찻잔에 차를 마시며 할머니와의 기억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조상을 잘 모신다고 하지만 생활 속에서 늘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에디트 할머니는 우리를 집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 다음해에는 한복을 갖고 오라고 하셨고, 딸과 저는 네덜란드 작은 도시의 크리스마스 미사에 한복을 입고 참석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고마운 분입니다.
이십여년 전 동양에서 온 불쌍한 유학생에게 열린 마음으로 가족처럼 대해 주셨던 그분의 ‘배려’하는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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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랑 받았지만 한국으로 오고 몇 년은 연락이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그 고마움을 잊고 살았는데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에디트 할머니에게 포인세티아 화분 하나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행복, 추억, 축하’의 의미를 담고 있는 화사한 크리스마스 꽃을 네덜란드로 보내고 싶습니다.
할머니, 어디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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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포하우스 대표 오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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