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현지시간) 구제금융 상환을 승인 받은 일부 미국 금융회사는 사내 파티를 열고 자축했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축포가 무색하게 이날 금융주 움직임은 시들했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복원이 아직 요원하다는 사실을 시장은 꿰뚫고 있었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는 신용시장을 마비시킨 데 이어 금융시스템 전반과 실물경기까지 무너뜨렸다. 진원지인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각국 정부가 복원에 나섰지만 정상화는 아직 멀기만 하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복원은 몇시를 가리키고 있을까.
$pos="C";$title="";$txt="";$size="550,158,0";$no="2009061013500528372_1.jpg";@include $libDir . "/image_check.php";?>
◆ 은행 여신 = 미국이 천문학적인 규모로 달러화를 찍어내 금융권에 밀어넣은 것이나 유럽 주요국이 구제금융을 실시한 것이나 목적은 한 가지다. 커다랗게 구멍이 뚫린 자본을 확충해 망가진 대차대조표를 복원하고 여신 기능을 정상화하겠다는 것. 교착 국면에 빠진 금융권이 제기능을 찾아야 이른바 '돈맥경화'가 풀리고, 혈액을 타고 체내에 산소가 공급되듯 실물경기 전반에 자금이 공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신 기능을 수행해야 할 금융권은 아직 자금을 쓸어담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 10개 은행이 680억 달러의 구제금융 상환을 승인 받았지만 남은 금액이 1290억 달러에 달한다. 금융권은 돈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정부 자금 상환을 위한 증자를 실시, 시중 자금을 흡수하는 상황이다.
달러화 리보금리가 0.6%대까지 하락하며 자금 경색이 풀리고 있다는 기대를 낳았지만 은행간 대출금리 격차는 오히려 확대된 것도 금융권이 자금 공급에 여전히 소극적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일부 투자가들은 리보금리 하락이 여신이 아니라 수신 확대에 따른 것으로 풀이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 추가 자본확충이 필요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가렸지만 테스트 '통과'가 자본건전성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위기의 뇌관인 파생상품 관련 부실은 평가에서 아예 제외됐고,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 새로운 자금 유입 없이 기본자기자본비율(Tier1)을 개선시키는 '화장술'을 동원한 것.
유럽 역시 금융권 스트레스 테스트를 준비중인 가운데 기준이 보다 엄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대손 상각 = 세계 금융회사가 지금까지 상각한 파생상품 관련 손실은 1조3600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달려온 것보다 앞으로 갈 길이 더 먼 것이 현실이다. 국제금융기금(IMF)의 추정에 따르면 파생상품 관련 손실은 4조1000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모기지 채권 부실이 서브프라임에서 프라임 등급으로 전이되기 시작했고, 신용카드 관련 채권의 손실 처리도 늘어나고 있어 금융권 부실은 IMF의 추산보다 더 커질 수도 있다.
금융위기로 가장 극심한 홍역을 치른 미국과 영국의 주택 거래가 활기를 찾고 있지만 금융권의 부실을 더 악화시킬 요인이 적지 않다.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에도 모기지 금리가 오름세를 타고 있고, 모기지 조건 완화 방안도 이렇다할 효과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최근 미국 상업용 모기지 대출 부도율이 2011년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부동산 가격이 안정을 찾지 못하면 관련 파생상품과 금융시스템 부실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리기 힘들다.
◆ 제도 개선 = 이번 위기의 책임 공방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 중 하나가 다름아닌 감독 당국이다.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부터 연방저축기관감독청(OTS)까지 감독 기관은 투자은행(IB) 업계가 파생상품을 내세워 무차별적으로 과잉 유동성을 양산할 때 눈뜬 장님과 다름 없었다. 유럽도 마찬가지. 자본은 국경을 넘나들며 감독의 사각지대를 헤집고 다녔지만 감독 기관의 시야는 국경을 넘지 못했다.
경제 석학들도 감독당국에 비난의 화살을 들이댔다. 이번 위기를 강하게 경고했던 조지 소로스는 감독기관이 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파생상품을 방관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업계에 휘둘렸다고 지적한다.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는 중앙은행을 포함해 대공황 이후 정립된 감독시스템이 시장의 진화를 쫓아가지 못한 순간부터 위기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이번 위기를 진화시키려면 새로운 감독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비난을 반영, 지난 4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회담에서 금융업계의 감독 강화가 주요 논제로 다뤄졌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 정부는 감독 당국을 겨냥해 '메스'를 들었다.
청사진은 화려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제 역할을 못한 감독기관을 대폭 축소하고 초거대 금융감독기구를 설립, 금융시장을 규제할 계획이었지만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통합안은 시행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연방통화감독청(FCC)도 주요 권한인 은행감독권을 내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유럽은 헤지펀드와 파생상품을 제도권에 흡수, 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업계와 마찰로 인한 진통이 크다. 헤지펀드와 파생상품의 정보 공개 강화 및 등록 의무화 움직임에 대해 각 업계는 로비와 반발을 일삼으며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치 논리가 개입, 배가 산으로 가고 있다며 비판했다.
◆ 회사채 시장 = 비교적 숨통이 트이기 시작한 곳이 회사채 시장이다. 여전히 자금줄이 얼어붙은 은행권과 달리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활기를 찾는 한편 스프레드도 좁혀지고 있다.
메릴린치에 따르면 유로존의 정크본드 스프레드는 지난해 12월 23.26%포인트로 고점을 찍은 뒤 내림세로 반전, 최근 14.64%포인트로 떨어졌다. 연초 이후 투자자들은 정크본드로 36%에 달하는 고수익을 올렸다.
회사채에서 고수익이 발생하자 저금리에 투자처를 물색하는 자금이 추가로 몰려드는 양상이다. AMG 데이터 서비스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12주간 미국 하이일드 채권펀드로 68억 달러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기업 입장에서 자금조달 조건도 나쁘지 않다. 지난주 하이일드 채권 차환발행에 성공한 IFCO시스템스는 10.875%의 수익률을 제공했다. 이는 투자등급 회사채의 쿠폰금리와 비슷한 수준의 조건이다.
발행시장뿐 아니라 유통시장도 제기능을 되찾는 모습이다. 유통시장에서 BBB 등급 회사채 투자 수요가 늘어나면서 스프레드가 하락하는 한편 지난 4월부터 유로존에서는 금융회사가 정부 보증 없이 발행하는 회사채 규모가 월간 250억 달러에 달했다.
다만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특히 하이일드 채권시장의 '사자' 열기가 펀더멘털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저금리 기조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것. 기업 이익이 줄어들고 있어 회사채 시장의 자금 유입이 순식간에 식어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 IPO 및 M&A= 회사채 시장과 함께 여명이 비치기 시작한 곳이 IPO 시장이다. 이머징마켓을 중심으로 글로벌 주식시장이 지난 3월을 저점으로 강하게 반등하자 개점휴업 상태였던 IPO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데이터 제공업체인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 4월 이후 글로벌 증시에 입성하기 위해 공모가 산정이 이뤄진 기업은 11개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한국이 6건으로 가장 많았고, 뉴욕이 3건, 토론토와 홍콩이 각 1건이었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 후 80을 웃돌았던 VIX가 30 내외로 하락하는 등 시장 변동성이 큰 폭으로 떨어진 데다 투자자들의 리스크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기업에 직접금융의 길을 열어 주었다. IPO 이외에 구제금융을 받은 미국 은행의 증자가 순조롭게 진행, 직접금융을 통한 자금 조달이 비교적 순조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톰슨 로이터에 따르면 연초 이후 글로벌 IPO 규모는 19억 달러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6% 급감한 수치다. 시장 전문가는 주가 변동성이 언제든 다시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펀더멘털 측면의 불확실성이 여전하기 때문에 투자심리도 급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기업 인수합병(M&A) 부문에서는 막강한 자금력을 확보한 중국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자동차와 철광석 등 각 부문에서 기업 사냥에 나서며 글로벌 M&A 시장을 주도하는 모습이다.
황숙혜 기자 snow@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돈 있어도 아무나 못 누린다"…진짜 '상위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