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 증권사 RA 1년차) 아침 6시30분.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각 초췌한 몰골로 출근해 보니 텅 빈 리서치센터엔 아무도 없다. 밤사이 뉴욕 증시를 체크하고선 한 시간 뒤 있을 모닝 미팅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 동료 RA들이 속속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아직 시계는 7시를 넘지 않는다.
보통 7시30분 리서치센터장을 비롯해 선배들과 갖는 모닝 미팅은 떨리는 시간이다.
센터장의 무작위 질문에 당황하는 일은 다반사지만 늘 긴장된다. 모닝 미팅 후에는 사수인 시니어 애널리스트(이하 애널) 일을 돕는 개별 일과의 시작이다.
점심 시간 외에는 자료 수집과 정리, 전화 응대 등 보조 업무에 여념이 없다.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닌 사수와 펀드매니저를 위한 서무가 된 느낌이 들 때는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간혹 끈질긴(?) 투자자들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으면 맥이 확 풀린다. 정해진 퇴근 시간은 없다. 저녁을 먹고 나면 새로운 일과가 또다시 시작되곤 한다.
장중에는 바빠서 처리하지 못한 개별 숙제가 산더미다. 주말도 없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일요일에는 거의 출근하다시피 하고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토요일에도 일을 해야 한다.
#2. (B 증권사 RA 2년차) 4월부터 정식 애널이 된다. 사수 애널이 다른 증권사로 옮기면서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그동안 온갖 구박과 스트레스가 한 순간에 잊혀지는 순간이다. 자신은 '운빨'이 매우 좋은 경우라며 싱글벙글한다. 비슷한 시기 RA를 함께 시작한 동료는 입지가 탄탄한 사수를 보며 정식 애널의 꿈을 미룰 수밖에 없다. 이게 현실이다.
#3. (C 증권사 RA 3년차) 벌써 RA 생활을 한 지 3년째다. 이제 그만 RA 딱지를 떼고 분석 보고서를 낼 수 있을 실력을 갖췄지만 여전히 나는 RA다.
사수가 건재하고, 그렇다고 다른 섹터를 맡을 수도 없고 한 마디로 줄을 잘못 섰다. 신설 증권사로 옮기면 정식 애널 명함을 준다는데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현재 몸담고 있는 대형 증권사에서는 RA를 비롯한 감원 등 구조조정 회오리가 불 것이란 흉흉한 소리만 들리기 때문이다.
지점이나 보직 이동을 권유받은 적이 있다는 동료 RA의 귀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증권사 RA(보조연구원ㆍResearch Assistant)들의 고민이 날로 깊어만 간다.
증시 침체기 증권사 구조조정의 1순위로 거론되는 것도 잠시 하루하루 쌓여가는 일감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다.
개인사를 돌볼 여력이 없다보니 정체성마저 흔들린다. 사수 애널과의 알듯 모를듯한 기 싸움(?)도 지친다.
최근에는 모 증권사 RA가 돌연 자살해 업계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D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사수 애널과 뜻이 맞지 않아 고생하는 RA들이 종종 나온다"며 "사수 애널이 RA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잘 가르치도록 하고 있지만 은근한 경쟁 심리가 발동해 일만 죽어라 시키는 경우가 있긴 있다"고 털어놨다.
E 증권사 기업분석팀장은 더 솔직히 털어놨다. 그는 "난 입사 당시 애널을 꿈꾸는 한 명의 RA가 아닌 '따까리(부하)' 수준이었다"고 고백하면서 "사수 애널과 1대1의 밀접한 구조로 돼 있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생각보다 심하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자살 사건 이후 나부터 경각심을 더욱 갖게 됐다"며 "사적인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RA들의 애로 사항을 직접 듣고 풀어줄 수 있는 부분을 해결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애널에 대한 재계약 불가 등 강도 높은 리서치센터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S 증권사는 RA들에 대한 보직 이동 등 재배치를 고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F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회사 내 인력 조정으로 어쩔 수 없이 타부서로 가게 된 RA들이 이직을 하거나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며 "대형사를 중심으로 리서치센터 인력 조정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RA들의 재계약 혹은 보직 이동 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RA들은 애널의 꿈을 꾸며 하루하루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G 증권사에 입사해 1년여 동안 정유ㆍ화학을 담당한 RA는 "시니어 애널을 도와 발간한 자료가 주가 움직임과 일치하거나 투자자들이 내 의견에 귀기울여 수익을 거뒀을 때 짜릿한 보람이 있다"며 "다른 직종에 비해 업무 강도가 세다는 단점이 있지만 기업과 주식 등 돈의 흐름을 보는 혜안을 지닐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고 전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이솔 기자 pinetree1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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