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버 로봇 잠입기 다룬 기상천외 애니메이션
존 코디 김, 선악 구분 없는 세계관 구축
조성연, 조명 색감 활용해 공간과 상황 대조

애니메이션 영화 '호퍼스' 스틸 컷

애니메이션 영화 '호퍼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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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픽사의 애니메이션 영화 '호퍼스'는 엉뚱하고 기상천외하다. 동물을 사랑하는 소녀 메이블이 비버 로봇으로 의식을 이전해 야생 생태계에 잠입하는 이야기다. 비버, 곰, 사슴, 도마뱀 등과 힘을 합쳐 고속도로 건설 공사로 폐쇄될 위기에 처한 호수를 지켜내려고 한다.


귀여운 동물들이 뛰노는 발랄한 표면 아래에는 블랙코미디와 스릴러를 오가는 예측 불허의 전개와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묵직한 철학이 살아 숨 쉰다. 이를 시각과 서사로 구현한 주역은 존 코디 김 스토리 슈퍼바이저와 조성연 라이팅 아티스트다. 각각 줄거리 구상 및 캐릭터 개발과 화면의 조명 조정을 담당했다.

김 슈퍼바이저는 이야기의 뼈대에서 단순한 선악 구도를 걷어냈다. 인간을 일방적인 가해자로, 동물을 무조건적 피해자로 규정하지 않고, 각자의 생존 논리를 입체적으로 충돌시켰다. 특히 갈등의 중심에 선 제리 시장을 평면적인 악당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그는 "교통 체증을 줄이기 위해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할 뿐"이라며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처럼 선악 구분이 없는 세계관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존 코디 김 스토리 슈퍼바이저

존 코디 김 스토리 슈퍼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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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신경을 기울인 부분은 메이블의 자연을 보호하려는 신념과 충동적인 성향 사이에서의 균형이었다. 김 슈퍼바이저는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해법을 찾는 데만 4년이 걸렸다"며 "초기 테스트에서 호전적인 모습이 과도하게 나타나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동물을 구조하는 회상 등을 추가해 일련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입체적인 서사는 조 아티스트의 조율을 거쳐 시각적으로 완성됐다. 동물의 귀여움을 부각하기 위해 야생의 거친 느낌 대신 푹신한 인형 같은 질감을 털에 입혔고, 메이블의 동양적 특성을 살리기 위해 까맣고 깊은 눈동자를 구현하는 데 공을 들였다.


조성연 라이팅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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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의 색감을 활용해 공간과 상황의 대조도 명확히 했다. 조 아티스트는 "자연광이 비치는 숲속이나 제리 시장이 핫케이크를 굽는 일상 공간은 붓으로 그리는 듯한 페인팅 기법으로 따뜻하게 연출한 반면 동물이 납치되는 실험실은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어두운 초록색을 배치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동물끼리 소통할 때는 눈의 흰자위를 나타내고, 인간 앞에서는 검은 눈동자만 보여주는 차이를 둬 재미도 극대화했다"고 덧붙였다.


세밀한 공정의 이면에는 숱한 시행착오와 치열한 작업이 있었다. 비버 로봇이 된 메이블이 스마트폰의 텍스트 음성 변환 기능을 활용해 제리 시장과 대화하는 장면의 경우, 그림 수천 장을 그려 벽에 붙여놓고 회의하기를 반복했다. 김 슈퍼바이저는 "스토리보드의 98%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며 "계속된 실패와 조율을 거쳐야만 관객의 뇌리에 남는 엉뚱하고 타격감 있는 유머를 건져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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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영화 '호퍼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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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을 배제한 일련의 과정은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에 수작업이 갖는 가치를 일깨운다. 조 아티스트는 "AI를 단순 반복 작업을 돕는 도구로 사용할 순 있겠지만, 수작업으로 붓 터치 하나하나를 조절하는 장인정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 슈퍼바이저도 "상상력이 필요한 서사 창작 영역에서 AI는 결코 아티스트를 대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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