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 관련한 청구서가 하나둘 날아들고 있다. 한국의 최대 우방인 미국은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공개 거론하고 있고, 금융·외환시장은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여기에 야당이 추진한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 무산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각종 경제적 손실은 더욱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계엄 사태로 우리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어느 정도일까.
우선 환율 관련 비용이 상당하다. 계엄 선포 직후 원·달러 환율은 한 때 1446원대까지 치솟았다. 11월까지 환율이 1300원 후반대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계엄 선포로 순식간에 3%가량 껑충 뛴 셈이다. 지금은 1420원대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계엄 사태 전보다 높고, 금융권에선 1450원대를 돌파할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실질실효환율이 1% 오르면 수입 재화 가격 상승으로 인한 설비투자, 민간소비 위축으로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0.1% 감소한다. 지난해 한국의 실질 GDP가 1996조원이란 점에서, 계엄으로 급등한 원·달러 환율(1446원)이 상당 기간 유지될 경우 연간 6조원에 가까운 GDP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계엄 사태는 자본시장에도 악재로 작용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계엄 다음 날인 4일부터 사흘간 코스피 시장에서 1조334억원을 순매도했다. 전체 코스피 시총은 사흘 새 약 58조원 증발했다. 코스닥도 연중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조(兆) 단위 자금이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갔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계엄·탄핵을 둘러싼 정치 불안이 지속되면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고 기업들의 자금 조달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연말 특수를 기대했던 자영업자들도 울상이다. 불안정한 정국에 회식을 취소하거나 소비를 줄이는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의혹과 탄핵 정국이 전개된 2016년 4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직전 분기의 절반 수준인 0.2%에 그친 바 있다. 영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가 우리나라를 '여행 위험국'으로 지정하면서 관광·문화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번 계엄 사태가 외교·안보 분야에 미친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손실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대외 정책에서 '민주주의 대(對) 독재·권위주의' 프레임을 통해 한국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 동맹으로 삼아 왔다. 북한·중국·러시아에 대응할 방어벽으로 우리 측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동맹을 강화해 온 미국으로선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미 정부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불쾌함과 당혹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차관급인 미 국무부 부장관이 동맹국 정상인 윤 대통령을 향해 공개적으로 "심한 오판"을 했다고 평가할 정도다. 미국은 철통같은 한미동맹을 강조할 수 있는 안보협의도 연기, 보류하고 있다.
당장 미 현지 언론에선 "바이든이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칭했던 한국의 계엄령 선포로 한미동맹이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시험대에 올랐다"(뉴욕타임스), "워싱턴이 과연 확고하고 믿을 만한 동맹으로 서울에 계속 의지할 수 있는가"(블룸버그 통신) 등의 지적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이번 계엄 사태로 미국이 주도하는 민주주의 진영 내에서 한국의 역할론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주요 7개국(G7) 플러스 가입을 추진해 한국의 위상을 격상시켜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이번 사태로 쏙 들어갈 전망이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국격과 입지 추락에 따른 손실은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협상의 달인'이라 불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계엄 사태를 지렛대로 천문학적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할 가능성은 덤이다.
이번 계엄 사태에 따른 경제·외교·안보 등 손실은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다. 여기에 여야간 입장 대립으로 탄핵 정국이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라, 이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과 앞으로 날아 올 계엄 청구서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삼성전자·롯데그룹 위기론, 트럼프 2.0 도래에 따른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한국 경제는 하루하루가 버거운 상황이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거시경제 환경 속에 대통령이 질러 놓은 비상계엄이란 초대형 돌발 악재까지 짊어지고 이 난관을 돌파해야 하는 상황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뉴욕(미국)=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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