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김서울의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5>
고궁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궁은 조선 궁궐의 껍데기에 가깝다. 건축물과 일부 조경 설치물이 남아 있을 뿐 궁에 사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이 사라진 후로 조선의 궁은 텅 빈 공간이 되었다.
실제로 사람이 살던 흔적과 당시 사람들의 일상과 습관-조선 왕실의 문화-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을 현재의 궁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오랜 시간 궁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채웠던 생활품과 인테리어 소품들은 모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지고 외장재만 남은 셈이다. 결국 궁에서 쓰던 물건을 보기 위해서는 고궁박물관에 가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고궁박물관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면 조선 왕실의 외장재와 내장재의 거리가 더 멀어지게 된다. 고궁박물관이 궁궐 자리가 아니라면 어디로 가야 한다는 걸까? 광화문 인근은 이미 고층 빌딩으로 빼곡한 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주변 건물들이 자리를 쉬이 내어줄 것 같지도 않다. 여러모로 고궁박물관은 당분간 경복궁의 일부로 남을 수밖에 없을 텐데, 박물관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건 부당하다.
왕실의 물건들이 과거에 쓰이던 그대로 궁궐 전각 안에 전시된다면 관람객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공간에서 그 물건을 사용할 이도 없거니와, 왕실 물건들은 이제 내 책상 위의 머그잔이나 이어폰 같은 실용품이 아니라 '유물'이라는 새로운 레이어를 덮어쓴, 유리관 안에서 조심스러운 손길로 관리받아야 하는 귀한 존재가 되었다. 다시 말해 지금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또 그다음 세대로 가능한 한 오래 물려줘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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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것을 지금 우리 눈에 보기 좋자고 박물관 수장고에서 꺼내 바람과 햇빛, 더러는 비나 눈으로 인한 습기와 냉기, 쥐와 벌레까지 있는 환경으로 노출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아쉬움은 접어두고 경복궁 안쪽의 고궁박물관에서 유물들을 열심히 눈에 담아 두었다가 얼른 다시 궁궐 전각으로 걸음을 옮겨 박물관 속 물건들이 놓였을 모습을 상상해보자.
-김서울, <아주 사적인 궁궐 산책>, 놀,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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