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2024 리뷰
CES 2024와 같이 거대한 콘퍼런스는 아는 만큼 보인다. 국내외 많은 미디어와 유튜버들이 이미 취재해 보도한 만큼, 전시된 내용보다는 기술 발전의 방향과 속도를 음미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키워드와 함께 현장을 느낄 수 있는 장면으로 CES를 요약했다.
모든 제품에 스며든 AI
이번 행사의 핵심 키워드는 ‘온디바이스 AI’였다. 지난해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인 챗GPT와 같은 LLM(거대언어모델)이 대중적으로 사용되면서 AI의 문턱을 일반 사용자 수준으로 낮춘 결과다. 모든 제품과 서비스에 AI를 적용했다는 건 그 효과에 기업들이 확신을 가졌다는 의미다.
종래에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즉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기업의 변화를 추구했다면 이젠 AI 트랜스포메이션(AX)이 대세가 됐다. 구글은 생성형 AI를 기존의 이메일, 사진과 동영상 편집, 기업 내 협업에 중점을 둔 워크스페이스 솔루션들을 출시했다. 이번 CES에 나오지 않은 마이크로소프트(MS) 코파일럿(Copilot)의 대항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패브릭스(FabriX)와 브리티 코파일럿(Brity Copilot)이라는 생성형 AI를 활용한 제품을 준비하는 삼성SDS였다. 패브릭스는 기업 내부의 시스템과 챗봇을 연결해주는 솔루션이고, 브리티 코파일럿은 회의록을 작성하고 요약해서 기업 이메일로 전달해주거나, 보고서를 자동으로 작성해주는 LLM 솔루션이다. 한국에선 올 4월에 선보인다.
온디바이스 AI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개념이다. 지금까지 AI는 PC나 노트북에서 AI 모델을 만들고, 서버나 클라우드에서 대량의 데이터를 대용량의 GPU를 활용해 학습했다. 그리고 학습된 결과를 클라우드에 올려서 서비스했다. 이런 환경에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이 재미를 봤고, 이들 기업은 엔비디아에서 초대형 GP(GPGPU)를 구입했다.
하지만 온디바이스 AI는 클라우드와 유사하지만, 학습한 결과물을 디바이스에 올려 서비스를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센서와 통신 모듈이 있고 이를 처리하는 전용AI칩에 NPU, 메모리가 같이 내장되는 SOC(System On Chip)형태로 구현돼야 한다. 결국 온디바이스 AI는 새롭게 탄생한 시장인 만큼, 이것을 주도하는 기업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CES에서 온디바이스 AI를 가장 잘 구현한 기업을 뽑으라고 하면 ‘딥(Deep)X’를 추천하고 싶다. 이 회사는 삼성에서 인큐베이션을 하는 C-랩 회사 중 하나다. 다양한 디바이스에서 AI 모델을 장착해 추론하는 NPU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회사다. 이 회사 칩은 기존 GPU 보다 10분 1의 전력을 소모하고, 가격도 10분 1로 제공한다.
특히 카메라 모듈에 딥X 칩을 붙이면 바로 AI로 연상인식이 가능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지금까지는 카메라와 PC급 컴퓨터가 필요했는데, PC 없이 카메라에 직접 장착할 수 있다. 양산되면 몇 만원 단위로 가격이 내려올 수 있다. 이 회사는 시대의 흐름과 맞아 떨어져서 향후 빠르게 성장할 것 같다.
온디바이스 AI는 차량에도 해당이 된다. 특히 퀄컴은 차량용 온디바이스 AI칩인 스냅드래곤 디지털 섀시를 전시했다. 이것은 AI 외에도 자동차의 콕핏(Cockpit), 외부와 무선연결을 지원하는 기능도 포함하고 있는 SOC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자동차에서는 AI기능뿐 아니라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운영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다.
LLM의 온디바이스화
온디바이스 AI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LLM을 디바이스에 설치해 작동하는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많은 인기를 끈 것은 래빗(Rabbit)사의 R1이라는 모바일폰이다. 가격은 199달러인데, 기존의 스마트폰과는 전혀 다르다. 기존 스마트폰을 쓰려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해야 하는데, 사람마다 보통 100개 이상의 모바일 앱을 사용하고 있다. 반면 R1은 앱을 깔 필요없이 말로 명령만 하면 된다. 여행을 예약한다든가, 음악을 듣는다든가, 우버를 부른다든가 모두 말로 명령을 하면 된다. 이전의 애플의 시리, 구글의 어시스턴트와 비슷하지만, 앱을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다만 말을 해서 작동이 안되는 앱들은 ‘래빗홀웹포털(Rabbit hole web portal)’에 접속해 정해진 방식대로 작동하게 해야 한다. 매우 혁신적이긴 하지만 포털에 들어가 학습을 하도록 하는 과정이 귀찮을 수 있다. 성공은 좀 기다려 봐야 한다.
로봇은 이제 시작이다
이번에 많은 관심을 집중시킨 건 HL만도의 자율주행 주차 로봇 ‘파키’였다. 로봇이 차 밑으로 들어가서 차를 들어올려서 주차하는 방식이다. 좁은 공간에서 차를 주차하게 돼 있다. ‘파키’는 주변 장애물, 주행로, 타이어, 번호판 등을 인식하는 것은 물론, 바퀴 사이의 거리와 자동차의 무게 중심 등을 스스로 판단한다. 차고가 낮은 스포츠카부터 무거운 스포츠 유틸리티 차(SUV)까지 모든 차종을 운반할 수 있다. 한국과 같이 주차공간이 매우 협소한 주차장에서 매우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듯하다.
또한 엑소 수트(ExoSuit)라는 로봇도 눈길을 끌었다. 입는 로봇이다. 이기욱 중앙대 교수의 휴로틱스에서 출시한 ‘H-플렉스’는 이번에 CES 혁신상을 받기도 했는데, 이 수트를 입으면 노인들도 등산을 할 수 있다고 한다.
현대기아차의 새 도전
현대자동차는 수소와 SDV라는 커다란 주제를 던졌다. 이번 전시에서 수소차와 수소 에코시스템 그림을 전시했다. 하지만 현대차가 진짜 추진할까 하는 의문이 들긴 했다.
오히려 수소 에코시스템보다는 SDV가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 제시한 SDV에코 시스템은 통합 ECU(전자컨트롤유닛)와 커넥티드카OS(운영체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비롯해 자동차 충전, 카 페이먼트 등 광범위한 에코시스템을 만들려고 하는 거대한 시도다. 이것이 구현되고 표준이 된다면 자동차는 컴퓨터처럼 부속품을 자유자재로 조립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현대차는 ‘포티투닷’을 4200억원 인수해 SDV 전략을 이끌어 가게 했다.
기아자동차의 PBV(다목적차량)는 전통적인 자동차의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차량 플랫폼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이동 수단과 동시에 사무공간, 상업공간, 레저 활동공간 등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CES에선 사람이 탈 수 있는 모듈을 짐을 실을 수 있는 트럭모듈로 바꾸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 차량은 2025년 양산 예정이다.
현대모비스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유니휠 기술을 장착한 옆으로 가는 자동차를 실제로 작동해 보여줬다. 이것은 옆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평행 주차를 쉽게 할 수 있고, 그 자리에서 360도 돌 수 있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도 쉽게 작동할 수 있다.
전통 기업들의 AI 전환
AI와 IT를 접목해 변신하고 있는 전통기업들도 이번 행사의 특징이다. 현대HD, 월마트, 로레알, 니콘, 만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월마트는 더그 맥밀런 최고경영자(CEO)가 기조연설을 통해서 MS와 협력을 통해 생성형 AI를 월마트의 방대한 데이터와 결합한 사례를 소개했다. 고객의 쇼핑을 돕고 소비자의 구매 특성을 고려해 선호하는 제품을 자동으로 배달해주는 ‘인 홈(In Home)’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또 직원들을 위해서도 생성형 AI를 활용해서 문서 작성과 요약을 도와주고 국가별로 매장에서 통역 서비스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맥밀런 CEO가 발표할 때, MS CEO인 사티아 나델라가 출연해 청중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많은 박수를 받았다.
카메라 제조업체인 니콘은 스마트폰 카메라로 인해서 매출이 급감하자 스마트폰 카메라가 따라올 수 없는 고급 망원렌즈, 반도체 공정의 매우 정교한 카메라 장비, 의료에 사용되는 광학 현미경 장비 등을 제조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HD 현대 정기선 회장은 기조연설에서 ‘사이트 변환(Site Transformation)’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발표했다. 이는 인프라 구축 방식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핵심은 AI를 통한 건설 중장비의 원격화, 자율주행화, 무인화 등이었다. 현대는 2030년까지 완전 자율적인 건설 현장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건설 산업의 미래를 바꾸겠다고 했다.
HD현대의 무인 중장비는 향후 건설현장이 어떻게 정의돼야 하는지를 보여줬다. 사람 없이 위험한 작업이나 극한 환경에서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건설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중장비를 움직이거나, 자율주행에 맡길 수 있다. HD현대의 미래가 주목되는 순간이다.
한국기업들이 주도한 CES
이번 CES 2024는 코로나 이후 최대의 행사였고, 4124개의 기업이 참가했다. 한국기업은 역대 최대 규모로 772개가 참가했다. 전체의 18.7%이다. ‘코엑스를 옮겨놓은 듯하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한국 참관객들이 많았다. 양이 질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듯 한국관들의 전시 수준도 가장 높았다. 다른 나라의 전시관보다 현재와 미래를 잘 보여줬다.
반면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은 다소 아쉬웠다. 애플은 CES에 안 나오기로 유명해 제외하더라도 MS, 엔비디아, 세일즈포스닷컴, IBM 등은 참가를 안 했거나 초청자들만 볼 수 있었다. HP, AWS, 구글 등 참가업체도 힘을 많이 뺀 상태였다. AMD, 퀄컴은 기조연설로 마무리했다. 미국기업들은 판을 주도하면 확실히 참여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예 불참한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미래기술 현장을 조감하기엔 다소 아쉬웠다.
일각에선 한국이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에서 기술 리더로 탈바꿈했다고 한다. 하지만 글로벌 빅테크들이 빠진 상황에서 우리가 세상을 리드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 한때 일본의 전자회사들은 잘나가던 시절, 도쿄만 팔아도 미국 땅 전체를 사버릴 수 있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 경제는 서서히 털려나가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국뽕’을 주장하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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