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유럽의회·회원국 대표 6일 논의
"쟁점 사항 합의점 도출" 보도 나와
연내 법 제정 시 AI 규제 주도권 선점 가능
유럽에서 세계 첫 '인공지능(AI) 규제법(The AI Act)' 제정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기업들 주도로 재편 중인 AI 분야의 역내 경쟁력 보호와 함께 실제 AI의 폐해를 막기 위한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EU에서 과연 어떤 규제를 내놓을지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EU국가들 간에도 AI와 연계된 다양한 경제, 국방 등 분야에 대한 이해관계가 엇갈린만큼, 규제 발표 이후에도 상당기간 동안 조율에 들어가야할 것으로 전망된다. EU의 당초 계획대로 올해 안에 규제 제정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여부에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은 6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집행위와 유럽의회, 27개 EU 회원국 대표단이 모여 10시간 이상 회의 끝에 AI 규제법안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EU 집행위나 유럽의회 등에서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오랜 회의 끝에 이날 회의 주체들이 핵심 쟁점에서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회의 전날인 지난 5일 EU 의장국인 스페인의 카르메 아르티가스 AI 및 디지털 장관은 "법안의 문구 중 85%는 이미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EU의 AI 규제법은 자동차나 장난감, 화장품과 마찬가지로 AI라는 제품의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이 법에는 기업이 AI 시스템을 교육하는 데 사용한 데이터와 기능을 문서로 명시하고 잠재적 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음을 입증하며 이를 외부 연구진에 감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다. AI 도구와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의미다.
또 EU는 AI 도구에 '리스크 기반(risk based)' 규제를 적용할 계획이다. AI 도구나 시스템의 특성을 고려해 위험 정도를 ▲용인할 수 없는(unacceptable) 위험 ▲고(high)위험 ▲제한적(limited) 위험 ▲최소한의(minimal) 위험 등 4가지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적용할 규제를 달리 적용한다.
용인할 수 없는 위험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AI 도구가 바로 실시간 안면 인식 시스템이다. 이날 논의 중에도 이를 두고 장시간 논쟁이 붙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의회 국회의원들은 EU 지역 내 이를 전면 사용 금지하도록 조치하려 하지만 EU 집행위는 국가 안보 등의 목적으로는 사용할 수 있게끔 일부 허용하자고 주장해 이를 두고 양측이 부딪혔다고 한다. 최종 합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 외에 EU의 AI 규제법에는 '딥페이크' 이미지나 가짜 영상 등을 만드는 AI 도구는 위험성이 적다고 보되 대신 AI가 제작한 콘텐츠라는 점을 분명하게 명시하라는 조항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글로벌 매출액의 6%를 벌금으로 내야 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긴다.
EU가 AI 규제법을 최종 합의해 연내 제정하게 되면 서구 국가에서는 처음으로 만드는 AI 규제법이 될 전망이다. 올해 챗GPT를 비롯한 생성형 AI 열풍이 불면서 AI 기술과 관련 규제 주도권 싸움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층 치열해진 상황에서 EU가 규제에 있어서만큼은 한발 앞서 나가게 되는 것이다.
EU는 미국이 빅테크 규제에 실패해온 점을 고려해 AI에 대해 강경한 규제를 추진해왔다. 2021년 처음 AI 규제법을 발의한 EU는 올해 안에 법 제정 절차를 마무리해 2026년부터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내년 6월 유럽의회 선거가 있는 만큼 내년 1월까지 법 제정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당분간 이에 대한 논의가 어려워진다. EU 내에서는 선거 절차가 마무리된 9~10개월 뒤에나 재논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법 제정에 속도를 냈다.
다만 EU 내에서도 회원국 간에 이해관계가 다소 달라 논의가 예상보다 길어졌다. 유럽 내에서도 AI 기술 개발 속도가 빠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는 일부 규제를 자율로 맡기는 안을 제시하는 등 EU의 AI 규제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프랑스가 2024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치안 및 보안을 위해 AI 기반 스마트 카메라를 배치하려 했는데 AI 규제법이 시행되면 이러한 조치가 어려워 반대 입장을 내는 식이었다.
유럽은 2018년 개인정보 보호법을 비롯해 IT 기업에 대한 압박을 수년간 지속하며 규제기관으로서의 리더십을 확고히 해왔다. 그만큼 유럽의 규칙이 글로벌 표준으로 채택되는 경우가 많아 AI 규제법도 도입 시 전 세계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아마존 등 대형 AI 기업을 보호해야 하는 미국은 EU의 AI 규제법을 강하게 견제해왔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EU의 접근 방식이 기술을 개발하는 민간 영역에 너무 가혹하고 AI 개발자를 소외시킬 위험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에 척 슈머 상원 민주당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미국판 AI 규제법을 준비하고 있지만, EU보다는 속도가 뒤처져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지적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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