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금융톡]대출 점검하라더니 어느새 '종노릇'압박…스텝꼬인 은행들
시중은행들의 스텝이 '갈지자(之)'처럼 꼬이고 있다. 최근까지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문제 대응을 주문하면서 대출금리를 인상하는 등 관리에 나섰는데, 불과 한 달 새 서울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이후부터는 다시 '상생금융 시즌2'와 관련한 압박이 커지고 있어서다.
최근 국내 시장금리와 은행권 대출금리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23일 서울 한 시중은행 외벽에 대출 금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오는 16일 국내 5대 금융지주회사(KB·신한·하나·우리·NH농협) 회장단 등과 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근 민생 행보에 집중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권의 이자 이익 확대 등을 비판하면서 이에 따른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상생 금융 확대 등이 논의 석상에 오를 것으로 점쳐진다.
업계에선 이런 흐름에 당혹스러워하는 눈치다. 지난달까지는 급증하는 가계대출 관리를 주문받았는데, 불과 한 달 새 상생금융 압박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실제 최근까지만 해도 은행권은 가계대출 관리에 집중해 왔다. 가계대출이 최근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면서 금융당국이 관리에 나서달라고 주문한 까닭이다.
이 영향으로 KB국민은행은 지난달 혼합(고정)형, 신잔액코픽스 기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각 0.1~0.2%포인트 올렸고, 신한은행 역시 이달부터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05% 인상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역시 각기 지난달, 이달 대출 금리를 상향 조정했다. 한때 돌풍을 일으켰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도 시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이런 스텝은 윤 대통령의 이른바 '종노릇' 발언으로 꼬이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국무회의에서 민생현장 방문 일화를 소개하며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 자영업자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달 1일엔 소상공인·자영업자 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은행들은 갑질을 많이 한다"고 직격 비판하기도 했다.
이를 기점으로 금융당국도 상생금융에 힘을 싣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전날 업권별 금융협회장들과 만나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줄여줄 수 있는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압박했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미국과 달리 국내 은행산업은) 금리 변동에 따른 충격은 온전히 위험관리를 할 수 없는 개인이 감당하고, 시장분석 능력이 있는 은행은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이런 지적이 이어지면서 은행권은 스텝이 꼬인 상태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지난달까진 가계대출 관리에 힘써달라더니 불과 한 달 새 상생금융안을 압박하는 상황이 됐다"이라면서 "당분간 (가계대출 관리를 위한) 추가 금리 조정은 섣불리 하기 어려워진 게 아닌가 한다"고 전했다. 그사이 지난달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약 3조6800억원 증가, 2년래 최고 수준으로 늘었다.
대신 은행권은 주말을 반납한 채 상생금융안을 마련 중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3일 1000억원, 신한은행은 전날 105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상생금융안을 마련하는 등 선제대응에 나섰다. 뒤이어 KB국민·우리·NH농협을 비롯한 시중은행, 특수은행, 지방은행 등도 주말을 반납한 채 상생금융안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상생금융 관련 압박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이달 중순 예정된 금융당국 수장과 주요 금융 회장단 간의 간담회에서도 상생금융 시즌 2와 관련한 본격적인 대책들이 논의될 것으로 점쳐진다.
아울러 당국은 내달 발표를 목표로 '정책서민금융 안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재원 마련에 난항을 겪는 햇살론·긴급생계비대출 등을 위해 은행권의 출연요율을 상향하거나 기부금을 확대하는 방안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론되는 '횡재세' 도입 대신 출연·기부를 늘리겠다는 취지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은행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검은 월요일에 줍줍 하세요"…59만전자·400만닉...
은행권에선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런 압박이 거세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은행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당시에도 그렇고 올해 초 상생금융 국면에서도 은행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이런 흐름이 최근의 가계부채 확대 흐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우려된다"고 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