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이통3사 28㎓ 주파수 할당 취소
5G 글로벌 주도권 놓치고 소비자 불만↑
6G 시대 준비에…전문가들 의구심 표해
지난 6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진정한 의미의 5G라고 불리는 28㎓ 대역 주파수를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로부터 모두 회수했다.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기지국 설치 등 인프라 구축에 소홀히 한 대가다. 28㎓ 주파수를 활용하면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28㎓ 주파수 할당을 받은 통신 3사는 의무적으로 각각 1만5000대의 망 구축을 이행해야 했는데, 3년 동안은 SKT 1605대, KT 1586대 LG유플러스 1868대만 구축해 이행률이 3사 모두 10%대 수준이었다.
2019년 4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5G 상용화가 시작한 이래로 국내 소비자들은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된 5G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통신 3사는 이제 '6G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혁신에 대한 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일관했던 통신사들이 6G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뒤따른다.
5G도 불완전한데..6G 준비로 분주
최근 국내 통신사들은 6G백서를 잇따라 발간했다. 백서엔 6G와 관련된 유망 서비스 전망과 기술 동향, 예상 주파수 등에 대한 분석과 발전 방향 및 방법론 등이 담겨 있다. 백서에 명시된 내용을 토대로 6G 초기 표준화 및 기술 생태계를 선도하겠다는 게 이들 통신사의 목표다.
6G의 글로벌 표준을 정립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지난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된 제44차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이동통신작업반(ITU-R WP5D) 회의에선 6G 목표 서비스와 핵심 성능 등의 개념이 담긴 IMT-2030 프레임워크(6G 비전) 권고(안)이 나왔다.
업계 안팎에선 글로벌에서 제시한 6G의 목표 서비스에 국내 인프라와 기술 수준이 다다를 수 있는지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상용화 목표 시기인 2030년까지 7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통신사들이 28㎓ 주파수 관련 인프라 구축과 서비스를 사실상 손 놓아버린 상태에서 6G 서비스들을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정보통신기술 기관의 한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 유럽에선 28㎓ 주파수를 지원하는 기지국과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국내에선 28㎓ 주파수를 지원하는 기지국이 전무한 실정"이라며 "솔직히 얘기하면 이미 5G 서비스도 뒤처진 상황에서 6G 서비스에서 앞서 나갈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5G와 6G는 본질적으로 서비스와 기술이 동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통신사마다 6G 시대의 주역이 되겠다고 외치지만 실상은 5G 상용화 시작 때 얘기한 것처럼 공염불이 될 수 있다"라며 "단순히 캐치프레이즈가 아닌 실질적인 투자와 성과가 날 수 있도록 통신사가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사업도 제대로 못 하면서 통신사업마저 뒷전인 그런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28㎓ 뭐가 다르길래?
28㎓ 등 밀리미터파 주파수는 국내 통신사들이 5G 서비스에 사용하는 3.5㎓의 중저대역보다 대역폭이 넓고 속도도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에 '5G가 LTE보다 20배 빠르다'라고 알려진 점도 28㎓ 주파수에 해당하는 말이다. 반면 28㎓는 전파 도달거리가 짧고 벽과 건물을 통과할 수 있는 투과성도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같은 면적에 통신망을 구축하려면 3.5㎓에 비해 더 많은 기지국을 만들고 장비를 넣어야 한다.
국내 통신사들은 이 때문에 투자 비용이 더 많이 드는 28㎓ 대신 3.5㎓ 전국망을 만들었다.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통신 혁신을 위한 투자를 소홀히 한 셈이다.
통신사들도 5G 서비스가 미흡했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 SKT는 6G 백서에서 "5G 도입을 준비하고 있던 당시 AR·VR, 자율주행 등 공상적인 다양한 서비스를 전망했으나 예상에 비해 실제로 서비스 활성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밝혔다. 5G 서비스를 구성하는 제반 환경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는데, 상용화 초기부터 5G 성능과 이를 토대로 하는 혁신 서비스에 대한 기대 수준이 과도하게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5G 기술만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은 아니었는지, 서비스를 구성하는 제반 환경에 대한 준비가 함께 될 수 있는지,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살펴봤다면 일반 대중과 사회가 5G를 바라보는 기대 수준과의 괴리가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상용화만 세계에서 제일 빨랐을 뿐이지 5G 서비스의 글로벌 주도권은 이미 미국과 일본 등 다른 선진국으로 넘어간 지 오래다. 미국 컨설팅회사 키어니(Kearney)에서 5G 상용화 33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별 5G 준비지수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6.9점을 받아 미국(8.4), 싱가포르(7.6), 핀란드(7.3),일본·노르웨이(7.1)에 이어 6위에 그쳤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오픈시그널 조사에서도 우리나라는 5G 커버리지 경험 점수에서 10점 만점에 6.7점을 기록, 43개국 가운데 5위를 차지했다. 싱가포르가 10점 만점에 8.2점으로 1위, 미국이 10점 만점에 8점으로 2위였다. 홍콩과 대만이 10점 만점에 7.1점으로 공동 3위였고, 네덜란드가 우리나라와 같은 6.7점으로 공동 5위에 자리했다.
방효창 두원공과대 스마트IT 교수는 "애초부터 5G 상용화 전략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여타 선진국들과 큰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일본은 28㎓를 시작으로 3.5㎓로 확대하는 전략으로 인프라를 구축해 왔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 시키려다 보니 경제성이 높은 3.5㎓를 우선시하다가 결국엔 28㎓를 포기한 것이란 지적이다.
그는 키어니와 오픈시그널 조사와 관련해서도 "5G, 특히 28㎓는 초고속, 광대역 특성으로 메타버스와 홀로그램, VR, AR 등 다양한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어 장점이 많은데, 한국이 이런 다양한 5G 기술 요소를 구현하지 못하는 것에 있어서 우려를 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소비자 화나게 만드는 반쪽짜리 5G
제대로 된 5G 서비스를 누리지 못한 소비자들을 더욱 화나게 만드는 점은 통신사들이 실제 사용환경에서는 구현될 수 없는 기술 표준상 목표 속도(20Gbps)를 실제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광고했다는 점이다.
통신사들은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라고 광고했는데, 2021년 기준 이통 3사의 5G 평균 속도는 0.8Gbps로 자신들이 광고했던 20Gbps의 4% 수준에 불과했다. LTE 속도의 20배라던 광고와 달리 LTE의 4~7배 정도에 그쳤다. 통신사들의 광고처럼 5G가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내려면 28㎓ 주파수를 활용해야 하고 충분한 수의 기지국이 있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5월 통신 3사가 5G 속도를 거짓·과장으로 광고한 행위를 문제 삼아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36억 원을 부과했다. 부과된 과징금은 역대 표시광고법 위반 사례 중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28㎓와 관련된 논란들을 교훈 삼아, 인프라 구축 및 생태계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6G 상용화 시점 앞당기기에만 급급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김용희 오픈루트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에 유리하도록 6G 표준안을 추진하는 것은 당연히 지지하고, 지원해야겠지만 5G가 상용화된 지 4년이 지난 지금도 ‘5G 오리지날 콘텐츠’가 없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네트워크 투자뿐만 아니라 디바이스 콘텐츠 투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최초' 타이틀에 대한 욕망을 이제는 내려놓을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 통신업계의 고질인 세계 최초 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충고다.
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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