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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의료사고 ‘환자 증명 책임’, 인과관계 개연성만 입증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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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소송 손배소’ 증명 책임 완화… 의료계 비상, 관련 소송 영향
의료사고 ‘형사 소송’ "합리적 의심 없을 정도 증명 필요"

대법원이 의료사고와 관련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의 환자 측 증명 책임을 완화하는 판단을 내놨다. 환자 측은 진료상 과실이 환자의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법원은 일반인인 환자 측이 의료행위 이전에 의료사고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 결함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서울 서초동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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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전신마취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한 A씨의 유족이 B병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의료진의 과실과 A씨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본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당시 73세)는 2015년 12월 바닥에 넘어지면서 오른쪽 어깨 회전근개파열 등으로 B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됐다. 이 병원 마취과 전문의인 C씨는 수술 당일 오전 10시15분께 전신마취와 부분마취를 진행하고 오전 10시42분께 간호사에게 상태를 지켜보라고 지시한 뒤 수술실을 나왔다.


이후 A씨의 혈압이 저하되고 산소포화도 하강 증세를 보이자, 간호사는 C씨에게 4차례에 걸쳐 연락했고 C씨는 오전 11시20분께 혈압상승제인 에피네프린 등을 투여했다. 그럼에도 A씨의 상태가 회복되지 않았고, C씨는 수술을 중단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다 대학병원으로 전원했으나 결국 A씨는 사망했다. 이에 A씨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B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C씨가 A씨에 대한 감시 업무를 소홀히 해 A씨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했고, 제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못한 잘못이 있어 C씨의 과실과 A씨의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 유족에게 99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다. 2심도 1심 판단을 유지했지만, 장례비 손해 부분을 감액해 유족에게 92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이 옳다고 봤다. 그러면서 "환자 측이 의료사고의 과실이 환자의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해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새로운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여전히 환자 측에 ‘진료상 과실’의 증명 책임이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환자 측이 의료행위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에서 통상의 의료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의 위반, 즉 진료상 과실로 평가되는 행위의 존재를 증명하고 그 과실이 환자 측의 손해를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손해 발생의 개연성은 자연과학적, 의학적 측면에서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될 필요는 없으나, 해당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의학적 원리 등에 부합하지 않거나 해당 과실이 손해를 발생시킬 막연한 가능성이 있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에는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진료상 과실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경우에도 의료행위를 한 측에서는 환자 측의 손해가 진료상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추정을 번복시킬 수 있다"고 판결했다.


반면 이 사건과 관련해 C씨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형사사건의 상고심에서는 금고 8개월과 벌금 7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2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C씨의 업무상 과실과 A씨의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C씨가 직접 A씨를 관찰하거나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신속히 수술실에 가서 대응했다면, 어떤 조치를 더 할 수 있는지, 심정지에 이르지 않았을 것인지 알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피고인이 피해자를 직접 관찰하고 있다가 심폐소생술 등의 조치를 했더라면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며 "형사사건에서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이 기준이고, 인과관계 추정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의료과오 관련 형사 사건에서 ‘업무상 과실’이 증명됐다는 사정만으로 인과관계가 추정되거나 증명 정도가 경감돼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허경준 기자 kj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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