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아흔의 식자공 권용국 씨는 장시간 조판대 앞에 서서 티끌처럼 작은 활자를 핀셋으로 옮겨 활판을 만든다. 빠르고 정확하게 손끝에서 문장들을 찍어내기 위해 거쳐온 시절은 그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두텁게 만들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종이를 찍어내는 인쇄 기계 틈에서도 그를 식자공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누구 하나 베테랑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혼자' 완성해온 이는 없다. 일에 대한 애정과 걸출한 능력, 인내심과 성실함만으로는 베테랑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어깨를 겯을 동료, 주변과 일터를 살피는 마음, 관계 맺고 돌보고 함께 고민하는 노력을 더한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일에 맞게 주무르는 동시에 더 나은 일터, 더 나은 노동을 빚어 왔다. 저자의 말마따나, 베테랑은 단순히 시간을 오래 쌓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그 시간을 '잘' 채우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사람이다. 각자도생의 시대, 우리가 베테랑이 된 이들의 몸을 살피고 그들이 걸어온 시간에 감화받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글자 수 928자.
[하루천자]베테랑의 몸<5>-식자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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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이걸로 성공하자 했는데, 이렇게 일찍 없어질 줄 몰랐죠. 전부 전산으로 가니까. 말도 못하게 없어지는 거예요."


1980년대 당시 권용국은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낡은 것이 된 활판 인쇄소가 설 자리는 없었다. 주문량이 급감했다. 거래하던 출판사들도 줄줄이 문을 닫으니 사업이 휘청거렸다. 후배에게 헐값에 인쇄소를 넘기고 외국으로 갔다. 빚을 졌으니 밤낮으로 일했다.

"1990년에 갔다가 월드컵 할 때 왔어요."


2000년대 초반 돌아온 한국은 더 가차 없이 달라져 있었고, 그는 활자 같은 것은 잊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자신을 찾는다고 했다. 활판 인쇄소 '활판공방' 박한수 대표였다. 박 대표는 전국을 돌며 고물 취급받던 활판인쇄기와 주조기를 수집해, 2007년 활판공방을 연다. 그가 활판 인쇄기를 돌리겠다며 현역에서 물러난 인쇄 기술자를 하나둘 수소문한 것이다.

파주에 있는 활판공방에 입성한 날, 권용국은 인생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활판을 다시 만났다. 그의 나이 75세였다.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반가웠죠."


손이 활자 사이를 기민하게 움직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몸이 기억했다. 하지만 예전 같은 몸이 아니다. 한 해 한 해 몸이 다르다. 젊은 시절 기계인 마냥 움직이던 손가락도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을 느낀다. 이제 돋보기를 대고 활자를 찾는다. 활판을 옮기는 그 짧은 순간에도 손목이 저릿하다. 납 조각 수백개가 든 판이다. 젊었을 때는 별것도 아니었는데, 생각한다. 그렇지만 분주할 이유도 없다. 식자공만 수 명에 다다르던 인쇄소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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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판공방은 일흔이 훌쩍 넘은 인쇄공(김평진)과 아흔이 다 된 식자공, 두 사람이 지키고 있다. 돈 버는 재미에 다리가 굳는 것도 몰랐던 1급 식자공은 이제 "돈을 떠나서 참 재미있어요"라고 한다. 식자재 앞에 설 수 있는 시간이 고마울 뿐이다.


-희정 글, 최형락 사진, <베테랑의 몸>, 한겨레출판,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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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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