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천자]베테랑의 몸<5>-식자공
누구 하나 베테랑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혼자' 완성해온 이는 없다. 일에 대한 애정과 걸출한 능력, 인내심과 성실함만으로는 베테랑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어깨를 겯을 동료, 주변과 일터를 살피는 마음, 관계 맺고 돌보고 함께 고민하는 노력을 더한다. 그렇게 자신의 몸을 일에 맞게 주무르는 동시에 더 나은 일터, 더 나은 노동을 빚어 왔다. 저자의 말마따나, 베테랑은 단순히 시간을 오래 쌓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그 시간을 '잘' 채우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 사람이다. 각자도생의 시대, 우리가 베테랑이 된 이들의 몸을 살피고 그들이 걸어온 시간에 감화받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글자 수 928자.
"그때는 이걸로 성공하자 했는데, 이렇게 일찍 없어질 줄 몰랐죠. 전부 전산으로 가니까. 말도 못하게 없어지는 거예요."
1980년대 당시 권용국은 인쇄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낡은 것이 된 활판 인쇄소가 설 자리는 없었다. 주문량이 급감했다. 거래하던 출판사들도 줄줄이 문을 닫으니 사업이 휘청거렸다. 후배에게 헐값에 인쇄소를 넘기고 외국으로 갔다. 빚을 졌으니 밤낮으로 일했다.
"1990년에 갔다가 월드컵 할 때 왔어요."
2000년대 초반 돌아온 한국은 더 가차 없이 달라져 있었고, 그는 활자 같은 것은 잊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자신을 찾는다고 했다. 활판 인쇄소 '활판공방' 박한수 대표였다. 박 대표는 전국을 돌며 고물 취급받던 활판인쇄기와 주조기를 수집해, 2007년 활판공방을 연다. 그가 활판 인쇄기를 돌리겠다며 현역에서 물러난 인쇄 기술자를 하나둘 수소문한 것이다.
파주에 있는 활판공방에 입성한 날, 권용국은 인생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활판을 다시 만났다. 그의 나이 75세였다.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반가웠죠."
손이 활자 사이를 기민하게 움직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몸이 기억했다. 하지만 예전 같은 몸이 아니다. 한 해 한 해 몸이 다르다. 젊은 시절 기계인 마냥 움직이던 손가락도 눈에 띄게 느려진 것을 느낀다. 이제 돋보기를 대고 활자를 찾는다. 활판을 옮기는 그 짧은 순간에도 손목이 저릿하다. 납 조각 수백개가 든 판이다. 젊었을 때는 별것도 아니었는데, 생각한다. 그렇지만 분주할 이유도 없다. 식자공만 수 명에 다다르던 인쇄소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월 150만원 견디느니, 美 가서 5억 벌죠" 서울대...
활판공방은 일흔이 훌쩍 넘은 인쇄공(김평진)과 아흔이 다 된 식자공, 두 사람이 지키고 있다. 돈 버는 재미에 다리가 굳는 것도 몰랐던 1급 식자공은 이제 "돈을 떠나서 참 재미있어요"라고 한다. 식자재 앞에 설 수 있는 시간이 고마울 뿐이다.
-희정 글, 최형락 사진, <베테랑의 몸>, 한겨레출판, 2만원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