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올테니 결혼해” 약혼녀 남겨두고 73년만에 백골로 돌아온 21살 청년
국방부, 고 황병준 하사 유해 확인
6·25전쟁 전사 호국영웅 가족 품에
1950년 경북 영덕 전투에서 전사
나라를 지키겠다며 집을 나간 21살 청년이 73년 만에 가족 품에 돌아왔다. “꼭 살아서 돌아올게, 결혼해”라며 약혼녀의 손을 놓고 떠난 그는 못 지킨 두 가지 약속을 ‘백골’의 모습으로 용서를 구했다.
6·25전쟁 때 전사한 국군 전사자가 73년 만에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고 국방부가 25일 알렸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단장 이근원)은 2010년과 2017년 경북 영덕군 우곡리 일대에서 발굴된 6·25전쟁 전사자 유해의 신원이 국군 제3사단 소속 고(故) 황병준 하사로 확인했다.
이번 신원확인은 전사자들의 병적자료 등을 바탕으로 유가족을 찾아가는 기동탐문을 통해 이뤄졌다.
국유단 기동탐문관은 고인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를 경상북도 의성군으로 확인한 후 제적등본 기록과 비교해 고인의 조카로 추정되는 황태기 씨(72세)를 2022년 10월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다. 채취한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정밀 분석해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유해발굴을 개시한 이후 215번째로 신원이 확인된 사례였다.
고인의 유해는 희생과 헌신의 흔적을 끈기 있게 추적해 온 후배 장병들에 의해 수습됐다.
2010년 3월 국유단과 해병 1사단 장병 100여명이 6·25전쟁 당시 개인호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가로로 줄지어 늘어선 뒤 경사면을 따라 발굴을 하던 중 머리뼈와 위팔뼈 등을 수습했다.
이후 2017년 3월 1차 발굴지점 기준으로 약 10m 떨어진 곳에서 아래턱뼈를 수습했다.
고 황병준 하사는 국군 제3사단 소속으로 1950년 7월 19일부터 8월 17일까지 벌어진 경북 영덕 전투에 참전했다 전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1929년 9월 경북 의성군 신평면에서 4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고인은 큰형이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되자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도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에 따르면 고인은 입대 직전에 약혼한 후 약혼녀에게 “꼭 살아 돌아올 테니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살자”고 약속한 뒤 떠났고 그것이 영원한 이별이 됐다.
고인은 1950년 5월 부산에 있던 제3사단 23연대에 입대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경북 울진으로 이동해 1950년 7월경 ‘울진-영해 전투’에 참전해 작전을 수행했고 1950년 7월 19일부터 8월 17일까지 ‘영덕 전투’에 참전 중 8월 14일 21세의 나이로 산화했다.
영덕 전투는 동해안 영덕 일대에서 국군 제3사단이 부산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제5사단을 저지해 반격작전의 발판을 마련한 전투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지난 24일 대구시 동구에 있는 유가족의 집에서 열렸다.
호국 영웅 귀환 행사는 6·25전쟁으로 당시 산야에 묻혔던 전사자를 찾아 가족 품으로 모시는 행사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연차 내고 프로필에 '파업', "삼성 망한 듯"… 내...
유가족 대표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에 관한 설명을 하고 신원확인 통지서와 함께 호국영웅 귀환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하며 위로를 전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고인 조카 황태기 씨(70대)는 “70여년이 지나도록 늦었지만 삼촌의 유해를 찾게 돼 다행”이라며 “나라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을 끝까지 찾아서 예우해주는 국가에 감사하며 더 많은 유해라도 가족 품에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