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총재 "한은 실력 검증받는 한해…중앙은행 능력 드러날 것"
한은, 창립 제73주년 기념사
국가별 물가오름세·경기상황 차별화
"각국 물가·경기가 차별화되면서 올해는 한국은행의 진정한 실력을 검증받는 한 해가 될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12일 한은 창립 제73주년 기념사에서 "쉽지 않은 1년을 보냈지만, 앞으로의 1년도 녹록지 않을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 1년간은 한은을 포함한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이 높은 물가상승률로 인해 공통적으로 빠르게 금리를 인상했고, 우리 국민 사이에도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며 "그러나 올해는 국가별로 물가오름세와 경기상황이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 결과 물가와 성장 간 상충관계(trade-off)에 따른 정교한 정책대응이 중요해졌으며, 그 과정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능력이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시각이다.
이 총재는 "다행스럽게 우리나라 물가오름세는 지난달 3.3%까지 낮아졌지만 기조적 물가흐름을 나타내는 근원인플레이션은 아직 더디게 둔화되고 있어 안심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라며 "앞으로도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를 면밀히 점검하는 가운데 성장의 하방위험과 금융안정 측면의 리스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도 함께 고려하면서 정책을 더욱 정교하게 운용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해 원·달러 환율 급등과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외환시장의 불안이 심화됐을 때 한은이 정부·감독당국과의 긴밀한 정책 공조를 통해 위기 극복에 일익을 담당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튼튼한 은행 부문이 큰 버팀목 역할을 해줬다"며 "최근에는 주택시장의 부진이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으나 부동산 대출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금융부문 리스크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중장기적 시계에서는 금융불균형이 재차 누증되지 않도록 유관기관과 협력해 가계부채의 완만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방안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비은행 금융기관 감독권 없다는 이유로 문제 방치할 수 없어"
이 총재는 정책과 내부경영 모두에서 발적전 변화를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한은의 주된 정책대상은 은행이었다"며 "한국은행법에서 금융기관이라 함은 은행만을 의미하고 있으나 비은행 금융기관의 수신 비중이 이미 2000년대 들어 은행을 넘어섰고 한은금융망을 통한 결제액 비중도 지속적으로 커져왔으며, 은행과의 자금거래 확대로 은행·비은행 간 상호연계성도 증대됐다"고 설명했다. 비은행의 중요도와 시스템의 복잡성이 증대돼 은행만을 대상으로 해서는 국민경제 전체의 금융안정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 총재는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권이 없다는 이유로 이 문제를 방치할 수는 없다"며 "감독기관과의 정책공조를 더욱 강화하고, 필요하다면 제도개선을 통해서라도 금융안정 목표 달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이 총재는 "이제까지는 기조적인 경상수지 흑자로 국외부문으로부터 대규모 유동성이 계속 공급돼 왔기 때문에 한은의 유동성 관리 또한 이를 흡수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 운용됐으나 대내외 경제구조가 달라지면서 경상수지 기조는 물론 적정 유동성 규모 등이 변화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며 "평상시에도 탄력적으로 유동성 공급이 가능하도록 제도나 운영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서 봤듯 모바일 뱅킹 등 IT기술 발달로 기관 간 자금흐름이 대규모로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는 만큼 상시적 대출제도 등 위기 감지 시 즉각 활용 가능한 정책 수단의 확충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총재는 "최근의 지급결제 혁신 흐름에 발맞춰 소액결제시스템을 실시간총액결제 방식으로 전환하고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도입하는 데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나가야 하겠다"고 강조했다.
"명문대 졸업장이 뛰어남 인증하는 시대 지나"
이 총재는 내부경영도 변화가 시급하다고 봤다. '경영인사 혁신방안'을 도입하면서 '한은사(寺)'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끄러운 한은'을 향한 긍정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급여 문제나 권한의 하부위임, 워크 다이어트 등과 관련해서는 아직 그 성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명문대 졸업장 하나가 뛰어남을 인증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이 총재는 "'우수한 인재여야 한은에 들어간다'는 과거의 평판에서 벗어나 이제는 '한은에서 10년 동안 훈련받은 직원이라면 믿고 스카우트하고 싶다'라는 말이 정착되도록 노력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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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예로 든 이 총재는 젊은 직원들이 변화의 중심이 돼주길 당부했다. 그는 "상사의 지시라면 수긍하기 어려워도 분위기를 고려해 그냥 받아들이던 자세에서 벗어나 이제는 이를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며 "젊은 직원의 아이디어와 간부들의 경험이 어우러질 때 법고창신의 교훈을 실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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