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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종섭의 속터뷰]김한겸 "미라는 과거 알려주는 메신저, 홀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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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극지연구 권위자 김한겸 명예교수 인터뷰
세계에서 하나 뿐인 미라 박물관 만들자
극지 연구, 한국 먹여 살리는 도시락 될 수도

스스로를 ‘노마드’라고 부르는 의사가 있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면서 창조적으로 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김한겸 고려대 의과대학 명예교수(하나로의료재단 하이랩 원장)가 주인공이다. 병리학자인 그는 단순한 의사가 아니다.


한국 미라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자 여섯 번의 사진전을 개최한 사진가, 대학극지의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극지연구가이다. 50년 간 검술을 닦은 검도 7단의 의료계 최고수이고 몽골과 아프리카 마다카스카르에 의학을 전파하는 글로벌 나눔봉사자이기도 하다.

지난 7일 점심에 만난 김 교수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좋은 곳이 있다”며 기자를 인근 식당으로 이끌었다. 동동주를 무료로 주는 식당이었다. 인터뷰는 그가 근무하는 하나로의료재단 하이랩 원장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김한겸 고려대 명예교수가 7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김한겸 고려대 명예교수가 7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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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에 미라가 여덟 구 있었지 않나. 교수직에서 퇴임했는데 지금은 어떤 상황인가.

미라 네 구는 고려대 구로병원에, 네 구는 안암병원의 해부학교실 냉장고에 있다. 그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내부에서 ‘왜 시체가 거기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제기를 해 보건소에서 실사를 나온 적이 있었다. 미라가 시신인 것은 맞다. 몇 백 년 된, 법에 없는 시신이었다.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돼 지금은 병원에서도 없애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됐다. 이슈가 되니 국회에서도 관심을 갖고 2021년에 법을 만들었다.


그럼 이제 미라를 체계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됐나.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법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 나는 만세를 불렀었다. 그런데 나중에 방송사에서 미라 관련해 문의하기에 ‘법으로 보존되니 문화재청에 한 번 물어보라’고 했더니 놀랄 만한 얘기가 나왔다. 법이 새로 발굴된 것만 보존해주는 것으로 돼있다는 것이다. 얘기를 듣고 그런 법은 차라리 안 만드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앞으로 미라가 나올 확률은 과거보다 훨씬 떨어진다. 국토 개발 5개년 사업도 끝났고 아파트도 이제는 더 지을 곳이 없을 정도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아쉬움이 컸다.

그래서 ‘유키즈 온더블럭’에 출연한 건가?

원래는 나갈 생각이 없었다. 안 나간다고 했었는데 지인이 ‘거기에 출연하면 사회적인 반향이 크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출연진에 전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미라전문가’라고 나왔다. 방송을 본 문화재청이 한 번 꿈쩍했다. 조사를 나왔다.


어디로 말인가? 병원으로?

그렇다. 지난해에 와가지고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질문이 참 재밌었다. 첫 번째 질문이 ‘한국의 미라가 왜 중요합니까?’, 두 번째 질문은 ‘한국의 미라는 외국의 미라하고 뭐가 다릅니까?’라는 식이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유치한 질문을 할 것이라면 인터뷰 하지 말자고 그랬다.

미라가 중요하지 않다면 나한테 찾아올 리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초등학생이나 하는 질문을 하면서 그걸 가지고 타당성 조사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안 해주겠다는 얘기하고 똑같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어떻게 됐나.

그냥 돈 없고, 전문가 없고, 시설이 없어서-. 만약 미라를 만약 모실 생각이 있었으면 예산을 확보하고 건물도 짓고 전문가 초청하면서 미라 박물관을 만들든지, 아니면 기존 박물관에다가 그런 시설을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을까.


그럼 고려대에는 지금도 미라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나.

그렇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유지될 것으로 본다.


김한겸 명예교수(왼쪽)가 미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한겸 제공

김한겸 명예교수(왼쪽)가 미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김한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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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보존에 대한 연구는 많이 돼있나. 쉽지 않은 일 같은데-.

한국의 미라 보존법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이 한국 미라를 이집트 미라와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완전 다르다. 이집트 미라는 MRI를 찍으면 안 나오지만 한국 미라는 나온다. 한국의 미라는 몸에 수분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미라는 지금도 탄력성이 느껴질 정도다. 그래서 한국의 미라를 수분을 말려 보존하는 것은 맞지 않다. 박물관처럼 오히려 몸에 체내 수분이 있으면서 감염이 안 되게끔 만들어 주는 게 답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의 미라는 몇 구 안 나왔으니 의미가 없다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화장해야 한다는 학자들도 있다.


화장하면 연구를 이어가기 힘든 것 아닌가.

그러니까 말이다. 한 번으로 끝나는 연구가 어디 있나. 어떻게 연구가 다 끝났다고 자신할 수 있나. 나중에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또 새로운 게 발견될 수도 있고, 다른 연구자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나. 정말 무서운 생각을 갖고 있는 학자들이 있다는 걸 알게 돼 깜짝 놀랐다. 50년 전 혈흔을 보관하고 있다가 범인을 찾는 세상이지 않나. 왜 내가 연구한 것이 최고이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지 안타깝다.


미라가 입고 있던 복식 등은 문화재로 지정됐다.

2021년에 지정됐다. 입고 있던 옷은 문화재가 됐는데 주인공인 미라는 되지 않아 아쉽다. 이런 과정에서 보존되지 못하고 사라진 미라들도 있다.


살아서는 못 만나고 죽어서야 만난 미라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고려대 구로병원에 있는 미라다. 지난 2010년 경기도 오산에서 발굴된 두 미라는 한 남자의 부인이었다. 임진왜란 전에 살았던 한 사대부의 전처와 후처로 추정되고 있다. 살아서는 못 만나고 죽어서 만난 사람들이다. 관 두께가 10cm가 넘었다. 아마 지금으로 치면 1억원 이상 갈 것이다. 주인공인 미라를 잘 모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20~30만 원짜리 관으로 모시는 상황이다.


김한겸 명예교수는 한국 미라가 세계적인 희귀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김한겸 명예교수는 한국 미라가 세계적인 희귀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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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지만, 미라 스토리텔링도 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 나는 과학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 의학이나 첨단 과학을 통해서 알아낸 것들이 해외 토픽이 안 될 이유가 없지 않나. 파평 윤씨 모자(母子) 미라만 해도 그렇다. 분만 중에 사망해 미라가 된 경우는 세계에서 유일하다. 희귀성이 있다.


또 그 미라 주인공이 조선 전기 세도가였던 윤원형의 종손녀라는 점도 흥미롭다. 그러면 이집트에 있는 로얄 패밀리와 뭐가 다른가. 당시 최고의 사대부가 입었던 옷이기에 복식은 중요하다고 하면서 왜 그걸 입은 사람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인가.


사망 원인이 자궁파열인데 우리는 과거 조상들이 어떤 질병으로 사망했는지에 대한 연구 같은 게 제대로 안 돼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피를 토하고 죽은 왕이 다섯 명이다. 원인이 무엇일까. 미라는 이런 것을 알려주는 메신저라고 할 수 있는데 왜 홀대해야 하나. 미라학은 앞으로도 연구할 게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공사 발굴 현장이 어떨지 모르지만 미라가 나올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우선 지금 있는 미라를 다 모아서 미라박물관을 하나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외국에 있는 미라를 못 가지고 와서 난리던데 올 때마다 같이 전시하면 멋있고 또 비교도 할 수 있다. 어린 아이들도 관심이 많으니 박물관을 세웠으면 좋겠다. 세계에 하나 밖에 없는 박물관이 될 수 있다.


극지 얘기 좀 해보자. 극지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어릴 때부터 가고 싶었다. 남극을 한번 걸어보고 싶었다. 교수로 일상에 묻혀 살던 어느 날 동기를 만나러 외국에 간 적이 있다. 그때 쉐빙선처럼 만들어놓은 박물관에 갔는데 그들이 50-60년대에 극지에 갔던 생활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다시 피가 끓었다. 극지연구소에 전화를 했더니 나이가 40세가 넘으면 위험해서 안 된다고 했다. 당시 내가 45세 때였다. 그래서 포기했다.


그러다가 2005년에 내가 동결폐조직은행을 운영한다고 언론에 나오니 극지연구소 본부장이 만나자고 했다. 그는 플랑크폰을 연구했는데 겨울에도 플랑크톤이 살아 있는 이유가 동결 방지 단백질을 분비해 자기 몸을 감싼다는 것이다. 나는 얼려서 보존하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인데 그는 동결을 방지하는 단백질을 연구하니 창과 방패가 만난 셈이었다. 좋은 기회다 싶어서 ‘남극 갑시다’ 했더니 ‘남극 가려면 한 달이 걸리니 북극에 가자’ 해서 2006년 4월에 북극 다산기지에 갔다.


극지 근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신체건강한 사람 중심으로 뽑다보니 물론 신체 건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다. ‘도를 깨우친 사람과 세상을 등진 사람’으로 나눌 수 있더라. 극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다 보면 사이가 좋았던 사람 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돌아와서 고려대 의대에 극지의학연구회를 만들었다. 극지 연구라는 개념조차 희박할 때였다. 극지에서 바이러스를 찾아내 발표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프랑스에서 자극을 받았는지 시베리아 동토층에 와서 발표하는 등 극지 의학 연구 경쟁이 시작됐다. 극지에 갔다 온 의사들 중심으로 2014년 6월 대한극지의학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꾸준히 연구를 계속해 올해 해양수산부로부터 법인 인가를 받았다.


극지 의학이 왜 중요한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는 잠수함에도 여성을 태운다는 것 아니냐. 극한 지역에서 한국인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등과 관련해 연구된 게 전혀 없다. 우리가 달 탐사, 화성에 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일본은 지금 화성 연구까지 하고 있다. 극지에서 인간의 반응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 그와 비슷한 환경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 우리는? 축적된 게 없다.


언젠가 우리도 갈텐데 현지 미생물 등에 대한 연구와 함께 인간의 의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환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의사가 사망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여러 과정에 대해 논의하고 대처하는 훈련을 해도 힘든 판인데-. 아무 준비도 없이 ‘사고만 없으면 돼’ 이런 식의 얘기를 할 것인가.


또 중요한 게 바이오 신물질이다. 극지에서 발견되거나 발굴된 신물질을 인간에게 유용하게 이용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는데 이는 마치 데스밸리와 같다. 데스밸리를 넘어 인류가 쓸 수 있는 신물질을 개발할 수도 있다. 대표적인 게 뭐냐면 해저 화산에 살고 있는 미생물이다. 그 미생물을 연구해가지고 유전자를 증폭시켰다 넣었다 하는 물질이 바로 해저 화산에서 나온다.


굉장히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가가치가 크거나 중요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조그마한 것이지만 엄청나게 큰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 것들이다.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전에는 간과했지만 우리가 만약 성공한다면, 바이오 벤처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반도체 이상으로 한국을 먹여 살리는 도시락이 될 수도 있다. 굉장히 중요할 수 있는 물질이 그것뿐이겠나.


아프리카 마다카스카르에서 의료 교육을 하는 장면. 사진 제공=김한겸

아프리카 마다카스카르에서 의료 교육을 하는 장면. 사진 제공=김한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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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몽골, 아프리카와 관련해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미라연구가 계기가 돼 2005년 몽골을 처음으로 방문한 뒤 지금까지 25번을 갔다 왔다. 2007년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을 맡은 것을 계기로 자궁경부암 진단법을 몽골에 전수하는 등 몽골 의사들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김 교수는 “1980년대에 WHO가 한국에 와서 5년 정도 병리의사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이제 우리가 그 보답을 하는 것이다. 자부심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몽골이 어느 정도 교육이 됐다고 판단한 김 교수가 눈을 돌린 곳은 아프리카 마다카스카르다. 2014년부터 여섯 차례 정도 방문하며 의사들을 교육하기 시작해 이제 마다카스카르는 병리학 분야에서만큼은 아프리카 최고의 강국이 됐다.


한국의 지원으로 마다카스카르는 병리학 분야에서 아프리카의 강국이 됐다. 사진 제공=김한겸 교수

한국의 지원으로 마다카스카르는 병리학 분야에서 아프리카의 강국이 됐다. 사진 제공=김한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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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은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면?

국제보건의료 협력 사업을 통해서 지식을 공유하고 싶다. 할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를 도와주는 사업을 하고 싶다. 그런 교육을 통해서 나라가 바꾸게 되고 그들이 스스로 진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런 걸 통해 세상이 바뀐다.


생활신조가 궁금하다.

‘한 번뿐인 인생 즐겁게 살자’ ‘삶을 즐기자, 즐겁게 살자’이다. 어차피 살다가 누구든지 죽는다. 먹고 사는 데 큰 문제가 없다면 주도적인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주도적이다 보니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인생은 딱 반반인 것 같다.


[김한겸은 누구인가]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동고, 고려대 의대를 졸업했고 고려대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학생처장, 대한병리학회 이사장, 한국도핑방지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8년 고려대 사회봉사단을 만들었다. 1968년 검도에 입문해 현재 7단이고 8단에 도전 중이다. 올해부터 고대 의대 검도부 사범을 맡아 50년 후배들과 호흡하고 있다.


육군과학수사연구소에서 군 생활을 한 경험이 인연이 돼 사진에 입문해 ‘현미경 사진전’ 등 6번의 사진 전시회를 개최했다. 지금까지 사용한 카메라가 50대가 넘는다. 중·고등학교·대학교 때는 미술반 활동을 하기도 했다. 글로벌 의료나눔 봉사자로 사는 것이 꿈이고, 미라박물관이 설립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사단법인 대한극지의학회 이사장, 하나로의료재단 하이랩 원장 등을 맡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검도 7단으로 의료계 최고수다. 사진 제공=김한겸

김 명예교수는 검도 7단으로 의료계 최고수다. 사진 제공=김한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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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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