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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간호법, 갈라치기 정치가 남긴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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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법 제정안 결국 폐기됐지만
의료현장 갈등 확산
입법 갈라치기, 국민의 더 나은 삶 없어

[시시비비]간호법, 갈라치기 정치가 남긴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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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윤석열(대통령) 때문이야"


지난 주말 이브닝 근무를 마친 조카는 자정 무렵 곤죽이 된 모습으로 퇴근했다. 간호사인 조카는 그날 저녁 28명의 환자를 돌보느라 한시도 앉을 틈이 없었다고 했다. 간호법이 통과됐을 경우 간호사 1인당 환자수가 법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업무가 대폭 줄어들 수 있었는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고된 업무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두 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 끝에 결국 폐기됐다. 지난해 5월 국회 보건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1년간 의료계와 정치권을 갈라치기한 이 법은 폐기된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 갈등의 불씨가 됐다.


대한간호협회는 대통령 거부권 직후 불법진료신고센터를 개설하고 회원들에게 병원에서 일어난 불법행위를 신고받고 있다. 'PA(Physical Assistant)'이라고 불리는 진료보조 간호사들의 신고가 폭주하면서 지난달 18일부터 운영된 사이트는 한 때 트래픽 초과로 접속이 막힐 정도였다고 한다. 초음파 및 심전도 검사, 채혈, 봉합, 대리수술, 기관 삽관 등 의사가 해야할 진료행위를 간호사들이 대신하고 있다는 신고다. 간호사들은 또 총선기획단을 꾸려 내년 총선에서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을 벼르고 있다. 간호법 제정안 폐지 이후 의료현장의 직역갈등은 한층 더 심해진데다, 간호사들을 정치 투사로 만들고 있다.


국회 간호법 논의 과정을 복기하면, 지난해 대통령 선거까지만해도 간호법 필요성에 공감했던 여야가 입장이 갈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상임위에서 간호법 제정안을 강행 처리하면서다. 그리고 올해 2월, 민주당이 법사위에 계류된 간호법을 본회의 직회부하면서 여야 대치가 본격화했다. 의석수로 밀어부치는 민주당에 맞서 국민의힘은 결사항전에 나섰고, 원칙을 강조한 대통령은 "합의 처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 간호사 처우 개선을 약속한 여권이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은 다수당의 입법 독주에 대한 견제구가 아닌가.

야당도 마찬가지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합의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이 의사들의 요구가 반영된 중재안을 냈지만, 야당과 간호사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간호법의 한 글자도 바꿀 수 없다는 다수당의 오만이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 사례처럼 여야의 입법 전쟁은 양보 없는 극단의 대치로 인해 결국 법안은 폐기 수순을 밟는 것이 자명한데 끝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정치는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이 아닌데 여야 모두 차이를 줄이고 합의점을 찾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만 병원을 개원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월급을 주는 의사와 월급을 받는 간호사가 수평적 관계로 업무를 조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간호법 논의 과정에서 이같은 의료현장이 고려됐다면 여야가 누군가의 밥그릇을 걸고 기싸움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7일 당 최고위원회의를 시작하면서 "정치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더 나은 삶"이라고 말했다. 혐오를 부추기는 갈라치기 정치 구도에서 국민의 더 나은 삶은 없다.





지연진 정치부장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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