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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계간 '자음과모음' 2023 봄 주제는 ‘목,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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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56호를 맞는 이번 계간 '자음과모음'의 주제는 ‘목, 소리’다. 몸과 떼어놓을 수 없는 신체적 현상이며 수많은 상호작용에 이용되지만 그 내용에 비해 형식으로는 주목받지 못한 목소리에 담긴 폭넓은 사회적 조건들(젠더, 세대, 출신지, 계급, 장애 유무, 감정 등)을 살핀다. 이번호를 끝으로 막을 내리는 게스트에디터 코너에서는 돌기민 소설가가 ‘물리적인 현상으로서의 목소리, 타인의 목소리를 어떻게 감각하며 목소리와 관계 맺는지에 관해 나눈다. 아울러 작가 김괜저, 여성·엄마·기획자라는 세 가지의 정체성을 지닌 김다은, 감정사회학 연구자 김신식, 하루 종일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이다울, 소설가 정용준,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최태규, 구술생애사 작가인 최현숙도 필자로 참여했다.

[책 한 모금]계간 '자음과모음' 2023 봄 주제는 ‘목,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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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대체 뭘까. 왜 나를 든든히 떠받치기보다 때때로 내 존재를 오롯이 드러내길 방해하고 존엄을 훼손하는 느낌이 들까. 앙앙대는 목소리로도 똑 부러진 작가 이미지 유지할 수 있나. 내가 프라이어였다면 기왕 기계의 힘 빌리는 김에 듬직하고 맛있는 동굴 보이스로 동료 의사 선생님들 단숨에 사로잡았을 것이다. 사실 다들 일상에서 때와 장소에 따라 거듭 목소리 통제하고 변형하므로 과연 자기 음성의 원본이랄 게 있을까 싶다. 난 목청 어찌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지 매번 헷갈리나, 성우나 배우는 발성 기술 오래 연마한 끝에 장산범이 되기도 할 것이다. - 게스트 에디터 돌기민 '목구멍에선 소리가 난다' 中


그래서 저는 떨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씩 신경 써 말하고 있는 제 목소리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집니다. 녹음을 한답시고 너무 꾸며낸 목소리로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제 머릿속은 에코 체임버(echo chamber)입니다. 가수들이 인이어를 끼고 자기 목소리를 체크하는 것처럼 저는 지금 제가 말하는 목소리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들을수록 이 목소리는 제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아요. 분명 평생 갖고 살아온 내 목소리인데, 마치 세일하는 싸구려 플라스틱 성대를 빌어서 말하고 있는 듯한 이질감이 듭니다.

- 게스트 에디터 김괜저 '팟캐스트의 두려움' 中

지금 생각해보면 목소리를 잃어버렸던 날들은 침묵의 시절이 아니었다. 그 반대다. 나는 목소리의 한복판에 있었다. 비행기가 높은 고도에 올라 구름과 바람을 뚫을 때 무겁고 시끄러운 침묵을 만들듯. 물과 바람을 통과할 때 침묵이 불가하듯. 푹 잠겨 있기에 깊이를 헤아릴 필요가 없었고 떠 있었기에 높이를 가늠할 필요가 없었던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침묵이라 착각했지만 그것은 중력 없이 둥둥 떠 있던 진공의 상태였다. 목소리는 목격되고 발견되며 때로는 누설된다. 어떤 이의 가슴과 머리 깊숙한 곳까지 파고드는 날카로운 손톱을 가졌고 높은 산을 넘고 깊은 바다를 건너는 튼튼한 다리를 가졌다. 그는 스스로 말하는 말이고 소리가 없어도 듣는 귀다.

- 게스트 에디터 정용준 '내게 없는 내 목소리' 中


자음과 모음 (계간) : 2023 봄호 | 자음과모음 | 332쪽 | 1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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