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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지만 한국에서 가장 일 잘하는 공무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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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환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 과장 인터뷰

장애인이지만 한국에서 가장 일 잘하는 공무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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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서윤 기자] 근로감독관은 공무원들 사이에서 3D 직무라 불린다. 그런데 근로감독관을 안 시켜준다고 상사에게 대든 공무원이 있다. "목발 짚는다고 무시하나요? 나한테는 왜 하고 싶은지 안 물어봅니까?" 바로 김덕환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 근로개선지도3과 과장이 수십년전 상사에게 소리를 지른 주인공이다. 작년 8월 그가 서부지청으로 온지 6개월만에 기간 내 처리 못한 지연 사건이 45건에서 11건으로 줄었다.


그는 지체장애 2급(척추측만증) 판정을 받은 중증 장애인. 돌을 지나 걷기 시작하던 즈음 갑자기 열이 나 병원에 갔더니 소아마비라는 진단을 받았다. 오른쪽 다리를 쓰지 못한다.

김덕환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 근로개선지도3과 과장

김덕환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 근로개선지도3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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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불편하지만 실적은 일반 근로감독관을 능가한다. 과장 승진 직전인 2016년 기준 5년간 연평균 177명에게 체불임금 4억5300만원을 돌려줬다. 일반 근로감독관이 처리하는 인원의 2배, 금액은 4배다.

실적이 좋다보니 받은 상만 7개가 넘는다. 2016년 공무원 100만여명 중 80여명에게만 주는 ‘대한민국 공무원 대상’을 받았다. 2013년 올해의 근로감독관상, 2011년 노동청장표창, 2009년 모범공무원상 및 노동청장표창, 2008년 노동청장표창, 2001년 노동행정유공표창을 받았다. 실적 상위 10% 공무원에게 주는 S등급도 6차례 받았다. S 등급은 연봉의 172.5%를 성과상여금으로 받는다. 실적을 인정받아 2016년 중증 장애인으로선 처음으로 5급 과장으로 승진했다.


-근로감독관이 되고 싶었던 이유가 뭔가요

△악덕업주를 잡는 특별사법경찰이잖아요, 제 꿈이었어요. 옛날엔 감독과라는 곳이 다들 무서워서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었구요. 감독관직을 아예 따로 뽑던 시절이었습니다. 악덕 사장들을 잡으러 다니는 현장은 매일같이 전쟁터죠. 그래서 근로감독관을 고용노동부의 꽃이라고 하잖아요. 1998년 IMF 터졌을 때 감독관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인원을 다시 채워야 해서 다른 과 직원들한테 감독관 할 생각있냐고 물어봤대요. 일이 힘드니까 다 안 한다고 그랬대요. 이 얘길 한참 뒤에 들었어요. 상사(계장)한테 큰소리 쳤지요, 왜 저한텐 안 물어보냐고. 몸이 불편한 제가 어떻게 근로감독관을 하겠나 싶었겠지요. 결국엔 저 혼자 발령받았습니다.


-사건을 처리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뭔가요

△내 가족이 돈 못 받으면 얼마나 화가 나요. 제 일처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와서 울부짖어요.생계가 달린 문제잖아요. 민원인 입장에선 돈 받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게 가장 힘들어요. 답답하잖아요. 빨리 해결해주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받아야 할 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눈물 흘리는데 치유해줄 수 있는 건 이 방법밖에 없어요. ‘월화수목금금금’ 일했어요. 원형탈모가 5군데나 생겼었죠. 명절에도 출근했어요. 추석 당일에 아침밥 먹고 일하러 나가려고 신발을 신는데 내가 생각해도 짠하더라구요. 그날은 안 나갔습니다.(웃음)

근로자들은 퇴직일로부터 14일 이내 임금을 받지 못하면 사업장 관한 노동청으로 신고할 수 있다. ‘피해를 입었으니 구제해달라’는 진정이 노동청에 접수되면 근로감독관이 근로자와 사장에게 출석요구를 해 사실관계를 조사한다. 근로감독관에겐 사법권이 있어서 조사에 응하지 않는 사장을 수갑을 채워 체포할 수도 있다. 악덕업주가 배째라는 식으로 임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형사처벌 절차로 넘어간다.


-잘 풀리지 않는 사건도 있을텐데요

△제가 그 회사 직원이 돼 봅니다. 그 사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어떻게 단장을 하고 전철을 어디서 갈아타고 언제 사무실에 도착하고 종일 어떤 일을 하는지 얘기하게 하고 가만히 눈 감고 듣습니다. 그러면 머릿속에서 영상처럼 펼쳐집니다. 밥은 누구랑 먹었고 자리 배치는 어떻게 했는지까지 그려봅니다. 하루가 짧으면 일주일을 그렇게 해요. 돈도 못 받아 속상해 죽겠는데 민원인한테 왜 증거를 갖고 오라고 해요. 전 같이 현장으로 갑니다. 함께 증거를 찾습니다. 악덕 사장에게 어떤 말을 해야 끽 소리를 못할까 연구를 합니다.

김덕환 근로개선지도3과 과장

김덕환 근로개선지도3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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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악덕 사장이 있나요

△교묘하게 법을 악용하는 사장들이요. 보통 입사할 때 근로시간을 일일이 따지고 계약하지 않잖아요 신입사원이. 한동안 오후 6시까지 퇴근하라 해놓고 채용공고와는 다르게 갑자기 야근을 계속 시키더래요. 계약서를 봤더니 오후 8시까지 일하기로 돼 있더라구요. 야근이나 휴일수당이 임금에 포함된 포괄임금제였던 건데, 그 신입은 그걸 모르고 연장근로에 동의한다는 계약서에 사인을 한 거죠. 이미 사인했어도 계약 내용이 부당하다면 무효화시킬 수 있어요. 그런데 '공짜 노동'이 부당하다는 걸 증명하는 게 쉽지 않아요.


-돈을 못 받아 악에 받치거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많이 찾을 텐데 힘들진 않았나요

△사람 일이잖아요. 민원인이 욕하고 소리지르면 커피 한 잔을 드립니다. 그러면서 한숨을 돌려요. 옛날에는 담배 한 대를 주기도 하면서 조사하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풀어주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본인 한풀이만 하다 가기도 해요. 말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어디 관공서 가는 게 싫더라고요, 딱딱하잖아요. 저한테 피의자 심문받는 악덕사장도 갈 때는 웃고 갑니다. “오늘은 수업료 냈다 치세요, 술 사달라고 안 할 테니까 벌금 내세요. 또 오면 안 돼요.”라고 합니다.


일이 힘들다보니 태만하게 일하는 감독관이 많다. 1년이 되도록 민원 처리를 하지 않아 직무유기로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 시민단체에서 ‘근로감독관 갑질 보고서’까지 내놓을 정도다. 직장갑질119가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제공받은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근로감독을 요청한 후 실제로 받아들여진 경우가 10건 중 3건(2021년 기준)에 불과했다. 근로감독관 1인당 담당 사건 수는 최근 5년간 49% 줄었지만 평균 처리 일수는 4% 줄어드는 데 그쳤다. 업무를 적당히 해도 쫓겨날 위험이 없는 무사안일한 공직 풍토의 단면이다.


김 과장은 이제 현장을 떠나 결재가 주된 업무인 과장 직책을 맡고 있지만 아직도 바쁘다. 후배들 챙기기에 여념없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장과 근로자를 대할 때 유의해야 할 점, 양방 주장이 다른 경우 처리 방법 등 본인의 노하우를 매뉴얼로 만들어 공유한다. 자신의 민원을 처리하고 시간이 남으면 다른 관할 민원도 처리하던 습관도 남아있다.


-과장 되고나서 달라진 점은 뭡니까

△경험 없는 MZ세대 후배들에게 저만의 문제 해결 방법을 알려주는 게 주 업무가 됐죠. 제 노하우를 알려주고 외우라고 합니다. 한번은 사장과 근로자가 저희 사무실에 와서 싸우는 소리가 과장실까지 들리더라구요. 담당 감독관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바로 메일을 써서 보냈습니다. 때로는 제가 근로감독관 역할을 하고, 후배가 진정인 역할을 맡아서 역할극을 해보기도 합니다. 감독관이 진정인 입장이 돼서 생각해보면 궁금한 게 생기고 어떤 부분을 더 물어봐야 하는지 정리가 되니까요. 막히는 사건 있으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다 봐줄 테니 무조건 가져와라”라고 합니다. 저야 할 줄 아는 게 감독 업무밖에 없으니까요. 제 경험과 시행착오를 후배들에게 다 알려주고 싶어요. 제 욕심인지는 몰라도 직원들이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거기까지 신경쓰나 생각들 하겠지만 같은 과인데 가족이다 생각하고 서로 챙겨야죠.


김 과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9급 공무원에 임관했다. 동기들보다 7~9년 먼저 시작했다. 대부분 동기들은 정년퇴직했다. 올해로 54세인 그의 정년도 6년 정도 남았다.


-정년퇴직 후에 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우리는 그만두면 대부분 노무사를 합니다. 5급으로 5년 이상 근무하고 일정 교육을 수료하면 자격증이 나와요. 저도 자격증을 따 놓기는 했는데 영업을 잘할 자신이 없어서요, 그것보다 후배들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지청마다 돌아다니면서 막힌 사건을 뚫어주는 거요. 제가 가진 노하우로 답을 내려주면 얼마나 시원할까 싶어요. 막힌 하수구를 뚫듯이 말입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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