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핼러윈을 음해하지 말라
AD
원본보기 아이콘

돌아보면 그저 운이 좋았다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성수대교가 무너지기 며칠 전에도 그 다리를 건넜고, 삼풍백화점 역시 종종 들르곤 했다. 그때 살던 동네가 두 곳 사이에 있었기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은 일상의 공간이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뒤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코로나 이전에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가서 찍은 사진들이 주르륵 나온다.


영화 ‘다크나이트’의 조커 분장을 한 내 얼굴을 보며, 그때도 거리에 가득했던 사람들을 보며 아득해진다. 그렇다.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런 종류의 사회적 재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수많은 말들이 쏟아졌고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 그중에서 동의할 수 없는 의견 하나. 우리 고유의 풍습도 아닌데 왜 핼러윈 데이에 열광하냐는 힐난이다. 뉴스 댓글이나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필자는 이렇게 되묻고 싶다.


우리 고유의 운동도 아닌 축구·야구 경기에 열광하는 것도 잘못인지? K-팝에 열광하는 전 세계 팬들도 문제가 있는 것인지?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상한 사람들인지? 핼러윈이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니라며 폄하하는 당신은 한복을 입고 한식만 먹고 국악만 듣고 온돌에서 자는지? 영화나 공연을 보러 갔다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것처럼, 핼러윈 축제에 놀러 갔다고 비난받을 이유도 전혀 없다.

이런 궁금증도 든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의 희생자들에게는 왜 그 다리를 건넜냐는 비난이 없었다. 삼풍백화점에 왜 갔냐는 힐난도, 왜 세월호를 탔냐는 비아냥도 없었다. 그런데 왜 유독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만 조롱당할까? 놀이를 죄악시하는 왜곡된 무의식 때문이라고 추측해본다. 우리나라에는 극도로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일과 공부는 칭찬하고 놀고 쉬는 행위는 죄악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했다.


열심히 일하고 독하게 공부할수록 박수 소리는 커지고, 신나게 놀고 오래 쉴수록 더 많은 손가락질을 받았다. 아이고. 오래전에 사라졌어야 할 시대착오적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는 듯하다. 다만, 시대착오적 비난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그들을 꾸짖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점은 다행이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핼러윈을 음해하지 말라. 노는 사람 쉬는 사람을 비난하지 말라. 도서관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학생도, 야근하고 퇴근하는 직장인도, 신년 음악회에서 베토벤의 교향곡을 감상하는 관객도,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도 모두 똑같이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반대로 말하면 국가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 줄 의무가 있다. 사고 당시의 상황이나 112 신고 일지를 보면, 국가는 분명히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최소한이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쓴 이유는 공권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고, 안전을 빌미로 공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일도 경계하기 위해서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우리들이 놀고 쉬는 공간에 안전을 위해 공권력이 개입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는 괜히 죄스러운 마음과 위로를 함께 건넨다. 살아남은 분들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를 응원한다.

AD

이재익 소설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