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 지난 20년간 환경재단에서 일하면서 여러 종류의 회의에 참석해왔다. 토론회, 협의회, 자문회의, 세미나, 콘퍼런스, 포럼, 정부 위원회 등등 회의를 마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마다 연극 ‘오슬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연극은 1993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자치수반이 만나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기까지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무대에 올렸다.
미국 극작가 J T 로저스가 쓰고 2016년 미국 뉴욕 링컨센터극장에서 초연했다. 2017년 미국 토니상 최우수연극상을 비롯해 뉴욕 드라마비평가협회 최우수 연극상 등을 휩쓸었던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됐다.
이 연극을 본 건 2018년 10월 말쯤이었는데 아직도 현실의 여러 장면에서 되살아나곤 한다. 평화협정 이름이 왜 하필이면 노르웨이 오슬로였을까 궁금했는데 연극을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노르웨이의 응용사회과학 연구소 ‘파포(FAFO)’를 운영하고 있던 티에유 로드 라르센은 자신의 이론을 실현해보고 싶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한 협상이 계속 실패하는 이유가 양쪽이 ‘공적인 목적’으로 만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내놓고’하는 협상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이런 자리에선 대개 양쪽이 자기의 목표만을 위해서 싸운다. 협상이 될 리 없다.
라르센은 협상의 주체를 조직이나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 보았다. 조직이나 단체에 속한 개인과 개인이 만나 신뢰를 구축하고 또 다른 개인과 개인이 만나 신뢰관계를 이어간다면 서로 대립된 조직이나 단체가 협의점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영업이나 프로젝트 수주업 종사자들은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이나 회의나 공통점은 사람이 안보인다는 점이다. 아주 작은 예로 외부 참가자의 팻말엔 이름과 소속이 적혀있지만, 정부쪽 참가자는 부서명만 있다.
다시 오슬로로 돌아가서 라르센 박사는 아내 모나 율과 함께 오슬로 인근 한적한 숲속 별장을 빌려 음식을 잘하는 노부부와 함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부의 중간관리자 두사람을 초대한다.
각국의 입장을 고수하며 화를 내던 두사람은 라스센 부부가 차린 저녁식탁에 앉으면서 ‘아, 저 사람도 나와 같이 두 아이의 아빠고, 전기요금 걱정을 하는 샐러리맨이구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 두 사람은 자신의 상급자를 이 별장에 초대하게 되고, 그 상급자는 또 그 윗사람과 동행하고 마침내 1993년 라빈 총리와 아라파트 수반이 만나 평화협정에 사인하기에 이르렀다. 라르센의 이론이 점진주의(Gradualism)라 불리는 이유이다.
우리는 지금 고환율, 고물가, 고유가의 삼각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는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기후재난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에 갇혀 있고 양당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싸움을 하고 있다. 문제 해결이 어려울 때 종종 싸움이 모양 좋은 도피처가 되곤 하지만 싸움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후보 시절 김치찌개에도 재료 넣는 순서가 중요하다는 걸 알려준 분이 현재 대통령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악수하게 만들었는데 우리가 못할 게 무엇인가. 싸우는 대신 대통령의 식탁에서 마주한다면 의외의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감히!
이미경 환경재단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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