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삶 그 자체" 누벨바그 거장 장 뤼크 고다르 별세(종합)
주제·기술 혁신 추구해 쇠퇴하던 프랑스 영화 일으켜
'네 멋대로 해라'로 점프 컷 등 새로운 영화언어 입증
13일(현지시간) 별세한 장 뤼크 고다르는 누벨바그의 주역이다. 누벨바그란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일어난 프랑스의 영화 운동이다. 주제와 기술에서 혁신을 추구해 쇠퇴하던 프랑스 영화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근원은 비평가 앙드레 바쟁이 발행한 영화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고다르는 프랑수아 트뤼포,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자크 리베트 등과 함께 이전 세대 프랑스 감독들의 안이한 영화 관습을 비판했다. 개인적 영감과 비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각성을 촉구했다.
그는 글로만 혁신을 요구하지 않았다. '콘크리트 작전(1954)', '요염한 여인(1955)' 등 단편영화 다섯 편을 연출해 경험을 쌓고 직접 새로운 영화문법을 적용했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장 폴 벨몽도와 진 세버그가 주연한 '네 멋대로 해라(1959)'다.
고다르는 당일 현장에서 대사를 써서 배우에게 전달하고, 간단한 리허설만 거친 뒤 촬영에 들어갔다. 핸드헬드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상을 담아내 생생한 느낌을 조성하고, 수많은 영화·문화적 인용과 오마주를 채워 넣었다. 편집실에서는 이제는 보편적 방식으로 자리 잡은 '점프 컷'을 만들었다. 연속성이라는 영상 논리를 파괴하며 의사소통이 단절된 도시인의 삶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훗날 고다르는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나는 에세이 작가다. 소설 형태로 에세이를 쓰며 에세이 형태로 소설을 쓴다.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글을 쓸 때처럼 지금도 나는 비평가다. 그때는 글로 비평했으나 지금은 영화로 한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새로운 영화언어 입증은 여러 나라의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영화들이 속속 등장했다. 트뤼포는 "고다르 이전의 영화와 고다르 이후의 영화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영화가 더는 문학적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에 머물지 않는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고다르는 이후에도 제멋대로 진행되는 이야기와 행위에 대한 논리적 설명을 거부하며 비약과 생략된 편집의 묘미를 보여줬다. '여자는 여자다(1961)', '비브르 사 비(1962)', '경멸(1963)', '국외자들(1964)', '중국 여인(1967)' 등에서 다양한 실험을 강행하며 현대 영화미학의 근간을 제시했다.
베트남전쟁과 1968년 5월 항쟁의 영향으로 '만사형통(1972)' 등 정치적 급진주의 성향의 비디오를 쏟아내기도 했다. '키노 프라우다(Kino-Pravda)'에 기반해 혁명적 예술성을 타진하며 정치적 선전과 투쟁을 위한 실험을 감행했다. 키노 프라우다란 러시아의 지가 베르토프가 1920년대 후반에 주창한 영화 이론이다. 연극적 형식의 영화가 노동자를 복종시키도록 만든다고 보고 전통의 틀을 멀리했다. 훗날 프랑스에서 자본주의적 영화 제작 시스템을 거부하는 방편으로 재부상했다.
고다르는 부르주아의 추잡한 행태를 고발하는 등 현대사회의 정체성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러나 상업적 실패를 맛보고 관객과의 진솔한 소통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를 알린 작품이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인생(1980)'이다. 정지된 이미지 등 아방가르드 영상 필체를 앞세워 형식에서까지 개별 순간이 모여 삶을 이룬다는 내용을 보여줬다. '프레디 부아슈에게 보내는 편지(1982)', '누벨바그(1990)', '프랑스 영화의 2 x 50년(1995)' 등에서도 음악과 철학, 영화의 역사, 사랑의 찬가 등을 다루며 누벨바그의 초심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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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화사-선택된 순간들(1998)'에서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삶 그 자체이다. 그것은 말해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 살아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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