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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우리금융, 내부통제 부실의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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왝더독(Wag the Dog).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 미국의 부동산금융 파생상품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발(發) 금융위기 이후 국내에 널리 알려진 말이다. 주식, 채권, 외환, 대출 등 금융시장 본체(몸통)에서 나온 파생상품이 몸통의 큰 변동성을 유발하는 현상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모양에 빗대 표현했다. 왝더독은 원래 미국에서 나온 영화 제목이다. 영화는 미국 백악관이 대통령의 걸스카우트 학생 성추행 이슈를 무마하기 위해 알바니아를 적국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벌여, 대통령이 지지율을 회복하고 재선에 성공하는 과정을 그린다. 음모론을 다룬 뻔한 스토리지만 리더가 책임을 피하려고 인명을 희생양으로 전쟁까지 벌이는 과정은 참혹하다.


우리은행 직원의 614억원 횡령은 비리의 규모로만 따지면 꼬리만 흔들리고 말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금융그룹 규모를 고려할 때 우리은행의 재무구조와 실적, 상장 모회사인 우리금융지주의 주가에도 큰 영향을 줄 만한 사안은 아니다. 실제 우리금융의 주가는 횡령 사태가 불거진 날 3.59% 정도 하락했다가, 다시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은행도 여느 횡령 사건처럼 개인의 비위 문제로 사안을 축소하려는 분위기다. 횡령이 과거 기업개선부 소속 직원의 비위라는 점을 강조하며 불똥이 다른 쪽으로 튀는 것을 방어하는 모양새다. 이원덕 우리은행장은 "한 사람의 악한 마음과 이기적인 범죄로 우리 가족 모두가 땀 흘려 쌓아 올린 신뢰가 한순간에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았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당사자는 물론 추가 연관자들이 있다면 그들에 대해서도 엄중한 책임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개인 또는 직원 몇 명의 일탈로 몰아간다고 우리은행의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책임이 쉽게 수습될 리 만무하다. 내부통제 문제로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기관장과 상임감사는 내부통제 최종 책임자로서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한다. 대규모 횡령은 대부분 내부통제 프로세스의 설계 문제보다는 운영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리은행 직원의 횡령이 2012년부터 이어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한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의 주요 보직자들이 책임 라인에 포함된다. 손 회장은 해외금리연계 파생상품(DLF) 불완전 판매로 내부통제 문제가 불거져 금융 당국에서 중징계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우리은행은 4년 연속 횡령 사고가 발생해 횡령 다발 은행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됐다. 횡령 당사자에 대한 처벌 정도로 이 꼬리표를 뗄 수 있을까.


우리금융은 23년 만의 민영화를 추진해 금융 당국과 금융 소비자들로부터의 신뢰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민영화 이후 5대 금융지주로서의 구색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보험, 증권 등의 금융 계열사 인수에도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를 위해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관계자들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움직여 왔다. 보험사 중에서는 어피너티와 경영권 분쟁 중인 교보생명을 잠재 매물로 꼽아 놓고 경영권 지분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증권사 중에서는 이베스트투자증권 등 매물로 나올 수 있는 증권사를 물색 중이다. 적절한 매물이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종금을 증권사로 전환하거나 신설하는 방법도 하나의 옵션으로 둔 상태다.


민영화든 금융 계열사 인수든 어느 것 하나 금융 당국과 금융 소비자,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성공시키기 어려운 일이다. 사고는 이미 터진 일이니, 사후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신뢰 회복 속도가 달려 있다. 적절한 대응이 늦어질수록 우리금융의 몸통 전략이 흔들리고 치러야 할 비용은 불어날 가능성이 크다.

임정수 자본시장부장






임정수 기자 agreme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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