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사찰’ 논란 한 달… 더 늘어난 추가사례·궁색한 해명에 우려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사찰 논란이 한달을 맞고 있다. 지난달 8일 언론의 첫 문제 제기 이후 광범위한 통신조회 사례가 계속 추가로 확인되고 있다.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을 확인한 것’이라거나 ‘검찰·경찰도 해온 수사관행’이라는 공수처의 해명은 궁색해졌고, 국가인권위원장마저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기관이 통신사의 협조를 얻어 영장 없이도 얼마든지 통신자료를 조회할 수 있는 현행 제도의 개선과 법원의 통신영장 발부 기준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통신자료 조회 넘어 통화내역 조회한 공수처
지난달 8일 TV조선은 ‘이성윤 황제 에스코트’ 보도 이후 공수처가 법조팀 소속 기자들에 대해 모두 15번에 걸쳐 통신자료를 조회했다고 처음 보도했다.
당시 공수처는 “수사 대상의 통화 상대방을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해명했다. 공무상 비밀누설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피의자와 통화한 상대방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같은 공수처의 해명은 곧 거짓으로 판명됐다. 얼마 뒤 공수처가 해당 기자의 어머니와 여동생 등 가족의 통신자료까지 조회한 사실이 드러난 것.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3항에 근거한 ‘통신자료 조회’가 법원의 영장 없이 검사가 수사·재판 등을 위해 통신사로부터 이용자의 성명과 주민번호, 주소 등을 임의로 제출받는 것인데 반해, 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에 따른 ‘통신사실 확인자료 조회’, 즉 ‘통화내역 조회’에는 법원의 영장이 필요하다.
공수처가 통신자료를 통해 확인된 이용자(기자)가 통화한 상대방의 통신자료까지 조회했다는 건 영장을 발부받아 통화내역을 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경우 통화나 문자전송의 상대방과 일시는 물론 통화시간, 발신기지국의 위치 정보까지 수사기관이 확보하게 된다.
계속 늘어나는 무차별 통신조회 사례
6일 현재까지 아시아경제를 포함한 수십여 곳 언론사의 법조팀 내지 정치부 기자 160여명과 외신기자 4명이 공수처로부터 통신자료 조회를 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참여한 80명의 야당 국회의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부인 김건희씨, 윤 후보를 비롯해 홍준표·유승민·원희룡 등 국민의힘 경선 캠프 실무 관계자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김도읍 정책위의장, 오세훈 서울시장, 김진욱 공수처장을 고발한 시민단체 ‘법치주의 바로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 이종배 대표, 천안함 생존 장병과 유가족을 돕는 보훈단체 청년미래연합 대표, 대학생단체 ‘신(新)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회원 6명 등에 대해서도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졌다.
반성 없는 김진욱 처장 태도·궁색한 해명 논란 키워
지난달 30일 김 처장은 국회에 출석해 이번 사찰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미 정치권과 언론계, 시민단체 등에 대한 무차별 통신조회 사실이 확인된 만큼 김 처장의 사과 발언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지만, 김 처장은 사과 대신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치중했다.
그는 의원들의 질책에도 “과도하다고 말씀드릴 수 없다”, “법에 의하면 (통신자료 조회 요건은) 사건과의 관련성이 아니라 이용자와의 연관성이다”, “신상을 턴 게 아니라 가입자 정보를 받은 것이다”, “불법이 아닌 만큼 사찰이 아니다”는 등 말로 해명을 하는데 급급했다.
특히 김 처장은 검찰과 경찰의 통신조회 통계를 공수처와 비교하면서 “왜 저희(공수처)만 갖고 사찰이라고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수사 중인 전체 사건 수를 고려할 때 상대적으로 공수처가 훨씬 많은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확인돼 도리어 야당 의원들의 질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공수처가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답습하고 있는 상황을 당연시하는 듯한 김 처장의 태도가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준 게 사실이다.
국가인권위원장마저 우려 표명… 통신자료 조회 요건 강화돼야
검사 출신 변호사 A씨는 “통신자료 조회나 특히 통화내역 조회는 범죄와 구체적인 연관성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이번 공수처의 경우를 보면 수사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너무 광범위하게 이뤄진 측면이 있다”며 “현행법상 통신자료 조회 규정은 영장주의를 잠탈하는 측면이 있는 만큼 좀 더 요건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자신들이 아팠던 기사를 보도한 기자의 통화 내역까지 조회한 것은 ‘보복 수사’라는 오해를 받기 충분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특히 ‘공무상 비밀누설’이 문제된 사안에서 기자에 대한 통화내역 조회를 통해 취재원을 역추적하는 수사기법이 제한 없이 허용될 경우, 취재원 비닉권이 유명무실화 될 수 있어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고발 사주’ 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된 야당 의원 1~2명이 참여한 단톡방이라는 이유로 전체 참가자들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 역시 지나쳤다는 평가다. 또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는 수사 중인 범죄와의 관련성이 크지 않은 기자의 통신영장을 발부해준 법원의 조치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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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마저 이날 성명을 내 “통신자료와 같은 개인정보를 제공할 때에는 수사에 반드시 필요한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제공하도록 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통제 절차를 관련 법률에 마련함으로써 기본적 인권 침해가 최소화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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