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
1920년 독일 동부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아브라함 살로몬 야쿠보비치. 친구들은 아디라고 불렀다. 영어로는 에디. 유대계 독일인으로 유복하고 사랑이 많은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1933년 나치가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 인생의 혹독함과 마주하게 된다. 라이프니츠 김나지움에 진학하지만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쫓겨난다. 신분을 위조해 기계공학 대학에 입학, 5년 공부 끝에 의료기기 제작사에서 일하게 되지만 이 역시 오래가지 못한다.
1938년 11월 9일, 부모님을 놀라게 해드릴 생각으로 비밀리에 고향집을 방문했다가 나치 돌격대에 붙잡혀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다. 이리 저리 끌려다니면서 감금과 탈출을 반복하기를 수차례. 천신만고 끝에 가족을 만나 11개월 동안 함께 숨어 지내지만, 이웃의 밀고로 발각돼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에 수감된다. 사람을 이용 가치로 구분하는 나치 분류법에 따라 가스실에서 부모를 잃고 약 1년 3개월 뒤인 1945년 5월까지 살아낸 인간 이하의 삶이 책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100세 노인’(동양북스)에 담겼다.
나치는 잔인했다. 사람의 육신과 내면을 철저하게 말살했다. 148명을 아주 좁은 샤워실에 몰아넣고 그 상태로 사흘을 방치했다. 간간히 “불이야” “가스다”라는 말로 극도의 공포감을 조성했고,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서로를 닥치는 대로 짓밟으며 휩쓸려 다니”게 했다. “비명이 낭자하고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 한 남자는 너무 심하게 짓밟혀서 한쪽 눈알이 튀어나와 얼굴에 매달려 있었다.”
아우슈비츠에서의 가치셈법은 사회와 달랐다. 낡은 누더기가 금보다 값지고 요긴했다. “금으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만, 누더기로는 상처를 감싸고, 죄수복 안에 넣어 온기를 유지하고, 간단히 몸을 닦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체를 나를 때도 유용했다. 간수들은 행군 사이 쓰러진 수감자를 다른 수용자로 하여금 옮기게 했는데, 그때에도 힘없는 수용자들에게 누더기는 요긴했다.
저자에게 누더기만큼이나 요긴했던 건 같은 동료 수감자 쿠르트였다. 그는 “만약 쿠르트가 없었다면 부모님이 살해당한 뒤의 절망과 비애를 도저히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토로한다. 매일 만나 함께 걸으며 나눈 대화는 “내가 계속 살아가도록 해주기에, 그리고 나를 걱정해주고 내가 걱정하는 누군가가 아직 이 세상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저자는 “좋은 친구 한명이 있다는 것은 온 세상을 얻은 것과 같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나치에 관해 배운 것, 아니 인간의 악의 평범성에 관해 배운 건 이것이다. “나치 체제에서 독일인들은 나약했고 쉽게 조종당한 것이지 즉시 사악한 인간으로 전락한 건 아니라는 것, 하지만 그들은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모든 도덕성을 잃어갔고 곧 인간성마저 잃어버렸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고문하고 나서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극도의 육체적 고통을 경험한 그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전한다. “오늘날 젊은 사람들이 자기 몸을 함부로 대하는 모습, 즉 담배를 피워대고, 술을 퍼마시고, 마약을 하면서 우리가 선물로 받은 이 멋진 기계를 스스로 망가뜨리는 것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우리도 이제 월급이 1000만원" 역대 최고…'반도...
종전 후 벨기에에서 난민으로 살다가 결혼 후 사업에서 성공한 저자는 노년에 들어서야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1992년부터 2003년까지 시드니 유대인 박물관에서 홀로코스트 경험담을 전하는 봉사활동을 하다가 지난 10월 102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