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수험생 두 번 울린 선생님들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제
교수·고등학교 교사들에 자문
"오류 있지만 최선 택할 것"
수험생들 "학생 물로 본 것"
재판부 "문제에 명백한 오류
추리·분석능력 측정 문제 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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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형민 기자] "실제 수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지난달 22일까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에 대한 이의 제기를 받고 대학 교수와 고등학교 선생님 총 16명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 중 한 명만 "문제에 오류가 있다"며 의견을 보류했다. 나머지 15명은 "5번을 정답으로 결정해도 문제 없다"고 했다. 15명은 "문제 일부에 논리적 모순이 있지만 1~5번 중 5번을 최선으로 고를 수 밖에 없다"면서 "실제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이 문제를 풀이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Ⅰ과 Ⅱ에서 B의 빈도는 서로 같다’는 조건(조건4 후단)을 사용해 문제를 분석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의견을 냈다.

지난 15일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의 정답을 5번이라고 한 처분을 취소하라는 한 행정법원의 판결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실상 선생님들은 수험생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험생들은 "막말로 수험생을 물로 본 것"이라고 봤다.

수험생들이 제기한 재판에서 이기며 선생님들의 예상은 틀렸다. 법조계와 교육계에서는 ‘집단 지성’의 승리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문제가 된 생명과학Ⅱ 20번은 아무런 변수가 없다면 유전자 구조가 많은 세대를 거치면서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다는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에 관해 묻는 문제였다. 이 법칙이 성립하는 집단은 ‘멘델 집단’, 그 반대면 ‘비멘델 집단’이라고 부른다.

수험생들은 이 법칙을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서 제시된 조건 1~7을 충족하는 동물집단 Ⅰ, Ⅱ의 정체를 추론해서 밝히고 또 다른 보기에 있는 ㄱ~ㄷ 중 옳은 것을 골라야 했다.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트린 것은 ‘B와 B* 사이 우열관계는 분명하다’고 한 조건3과 ‘Ⅰ과 Ⅱ에서 B의 빈도는 서로 같다’는 조건 4였다. B와 B*가 서로 우열관계는 분명하지만 무엇이 우성이고, 열성인지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험생들은 경우의 수를 나눠서 공식을 넣고 따져봐야 했다. 그리고 조건4에 따라 Ⅰ과 Ⅱ 모두 멘델집단일 가능성까지 고려해 봐야 했다. 그렇게 따져 본 경우들 중 ‘집단Ⅱ가 멘델 집단이고 B*가 B에 대하여 우성인 경우’에서 집단Ⅰ의 유전자형 B*B*의 개체 수가 음수인 -10이 나왔다.

수험생들은 이를 문제의 오류라고 주장했다. 동물 개체라고 하는 것은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실체를 말하는데, 숫자로 표현하면 아예 없는 0이거나 한 개 이상이기 때문에 양수로 반드시 표현돼야 한다. ‘사과가 접시에 -2개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수험생 대부분은 이를 풀이과정을 다 끝낸 다음 검산 과정에서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황과 내용들을 모두 고려해 판결했다. 특히 수험생들이 시험을 푸는 상황까지 구체적으로 그려보면서 문제에 오류가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조건4까지 활용해 더 충실하게 문제풀이를 시도한 수험생들이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는 집단Ⅰ, Ⅱ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될 수 밖에 없어 문제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했다. 또한 "검산을 거치지 않고 5번을 정답으로 선택한 수험생, 오류를 발견하고도 이를 무시하고 5번을 선택한 학생 등 수험생 유형들을 나눠 모두 살피고 각자 활용한 다양한 풀이방법들을 인정해줘야 한다"면서 "이 수험생들 간 수학능력에 차이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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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특히 "과학 탐구 영역은 단순한 암기와 기억력에 의존한 평가를 지양하고 추리하고 분석하며 탐구하는 능력을 측정할 수 있도록 출제해야 한다"며 "(수험생들의 독창적인) 풀이방법이 논리성, 합리성을 가지고 있는 이상 출제기관이 의도한 풀이방법이 아니어도 당연히 유효한 정답을 도출할 수 있도록 문제가 구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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