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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허버허버' 쓰면 큰일나요"…인터넷 달군 성 갈등 '언어 전쟁'

최종수정 2021.04.20 15:16 기사입력 2021.04.2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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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버허버' 등 인터넷 신조어 두고 '젠더 갈등' 불거져
일부 유행어들 특정 성별 혐오 용도로 쓰인다는 지적
인터넷 유행어, 빠르게 인기 얻고 잊혀지는 특성
어원 불분명해 혐오 단어 여부 일일이 파악 힘들어
전문가 "'혐오 단어'는 사회적 맥락 통해 규정될 수도"

유명 요리 유튜버 '고기남자'는 최근 자신의 영상물에 '허버허버'라는 의성어를 사용했다가 '남혐 논란'에 휩싸였다. /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유명 요리 유튜버 '고기남자'는 최근 자신의 영상물에 '허버허버'라는 의성어를 사용했다가 '남혐 논란'에 휩싸였다. /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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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최근 '허버허버', '오조오천개' 등 인터넷 신조어를 둘러싸고 '젠더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누리꾼들은 이같은 단어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특정 성별을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며 주장한다. 남혐·여혐 등 온라인 공간에서 일고 있는 성 갈등이 '언어 전쟁'을 방불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논란이 불거진 단어들의 실제 어원이 불분명한데다, 모든 인터넷 유행어를 일일이 체크하는 것도 힘들다는 데 있다. 모든 유행어를 조심스럽게 쓰거나, 아예 입에 담지 않아야 논란을 회피할 수 있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젠더 갈등으로 인한 언어 전쟁이 표현의 자유까지 훼손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 13일 구독자 수 99만명에 이르는 유명 유튜버 '고기남자'는 영상에 "허버허버"라는 의성어를 썼다는 이유로 일부 누리꾼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당시 고기남자는 음식을 먹는 자신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게재하며 자막으로 '허버허버'라는 문구를 넣었다. 허버허버는 최근 인기를 얻은 인터넷 신조어로, 뜨거운 음식을 급하게 먹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누리꾼들은 '허버허버'를 이른바 '남혐 단어'로 판단했다. 일부 남성 혐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단어를 남성 비하 용도로 쓴다는 주장이다.

논란이 커지자 고기남자는 사과문을 통해 "제가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나름 위트있게 표현한다고 머리 속에서 나온 단어를 썼던 것"이라며 "이게 그런 (남혐) 용어로 쓰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해명했다.


게임 소개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 '중년게이머김실장'은 한 온라인 게임에 대해 설명하던 중 '오조오천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불거졌다. /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게임 소개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 '중년게이머김실장'은 한 온라인 게임에 대해 설명하던 중 '오조오천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논란이 불거졌다. /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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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인터넷 신조어가 '혐오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일에는 게임 소개 유튜버 '중년게이머김실장'(김실장)이 한 온라인 게임에 대해 설명하던 중 "오조오천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오조오천', '오조오억' 등은 매우 큰 숫자를 강조하는 의미로 쓰이는 인터넷 신조어이지만, 일부 누리꾼들은 이 단어를 두고 "여초 커뮤니티에서 남성 정자 수가 많다고 희롱할 때 쓰이는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실장은 해명 글을 게재하고 "제가 말한 오조오천번은 아무 생각없이 말한 의미 없는 숫자"라며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유튜브이니 앞으로는 해당 표현을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허버허버', '오조오천' 등 인터넷 신조어들은 정확한 어원을 알아내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단어는 보통 사소한 게시글, 영상 등에서 시작해 삽시간에 인기를 얻다 사그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특정 성별 혐오 성향을 가진 커뮤니티로부터 확산했는지 여부는 일일이 확인하기 힘들다.


'허버허버'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계기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 / 사진=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허버허버'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본격적으로 확산한 계기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 / 사진=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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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허버허버'는 과거 여성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이 "뜨거운 고기를 허겁지겁 입에 넣고 '허버허버' 하면서 먹는 남자친구를 보고 정이 다 떨어졌다"며 토로한 글을 통해 인기를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허버허버'라는 표현이 입 안에 음식물을 넣은 사람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는 이유다.


'허버허버'는 지난 2월부터 국내 누리꾼들로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 사진=구글 트렌드 캡처

'허버허버'는 지난 2월부터 국내 누리꾼들로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 사진=구글 트렌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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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꾼들의 특정 단어 검색 빈도를 보여주는 '구글 트렌드'를 보면, 허버허버가 국내 인터넷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은 지난 2월부터다. 그러나 이 의성어가 최근 2개월 동안 어떤 과정을 통해 남성을 혐오하는 의미로 변질됐는지, 혹은 실제 '남혐용 은어'로 쓰이고 있는지 증명하기는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어원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단어 사용마저 조심해야 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평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을 즐겨 쓴다는 직장인 A(26) 씨는 "요즘 유튜브 등에선 '허버허버'라는 말을 쓰면 큰일 난다. 정말 황당하다"라며 "지금껏 다들 잘 사용해 왔던 유행어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남혐, 여혐 단어로 둔갑해 있는데 무슨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회사원 B(33)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젠더를 주제로 한 갈등이 첨예하다보니 생기는 부작용 같다"라며 "옛날엔 인터넷에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쓸 수 있어서 좋았는데, 지금은 단어 사용 하나하나 조심해야 한다. 이게 표현의 자유 위축이 아니면 뭐겠나"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문가는 '혐오성 단어'는 단어 자체의 어원이 아닌 사회적 맥락을 통해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온라인 공간에서의 혐오 단어 논란은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며 "단지 과거에는 '된장녀', '김치녀' 등 대상과 비난의 의미가 뚜렷한 단어들이 유행했다면 지금은 기조가 좀 더 모호한 쪽으로 변화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고 분석했다.


이어 "단지 혐오 단어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사전적인 의미가 아닌, 사회적 맥락을 통해서도 규정될 수 있다"라며 "단어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집단에 의해 쓰이는지 등에 따라 혐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니, 사용에 주의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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