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혜리/언론인·문화비평

[톺아보기]'미나리' 뒤집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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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이 있다. 인천국제공항이 생기기 훨씬 전 국제선이 출발하던 김포공항 출국장에서 미국으로 유학가는 삼촌을 중심으로 가족이 함께 찍은 것이다. 얼마 후에 숙모가 도미해 삼촌과 합류했다. 삼촌 부부는 한국에서 일류대학을 나온 엘리트들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위해 허드렛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어렸던 사촌동생은 우리 집에서 1년 정도 있다가 4살 나이에 목에 명패를 걸고 혼자 부모를 찾아갔다. 미국에서 사촌 두명이 더 태어났고 사돈 할머니가 외손주들을 돌봐주기 위해 미국으로 가셨다. 멸치부터 고춧가루 등 미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을 바리바리 싸가지고서.


디테일은 다르지만 영화 ‘미나리’의 스토리와 비슷하다.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이 자전적 스토리를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사실 그것은 미국에 이민간 가족을 둔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스토리다. 차이가 있다면 정 감독은 그것을 영화로 만들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영화 ‘미나리’에 세계의 영화계가 보내는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등 미국 안팎에서 90개의 영화상 트로피를 받았고 미국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상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진솔한 스토리, 윤여정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 등 이 영화가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디아스포라’에 대한 공동의 정서가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폈고 정착기를 지나 그 사회에 동화되어 살고 있다. 조상 대대로 살던 본토를 떠나 타국에 정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민의 역사는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의 구분없이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시대와 국적이 어떻든 이민 가족은 세대간의 차이로 가족간에 어느 정도 갈등을 겪게 마련이다. 이민 온 사람들은 언어, 문화, 사고방식 등에서 고국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갖고 있지만 1.5세대, 혹은 2세대들은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3세대에 가면 현지인과 다를 바 없는 사고방식과 문화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갈등을 극복하는 것은 역시 끈끈한 가족애라는 것을 ‘미나리’는 이야기한다.

한국인 이민가족 이야기가 영화의 주제가 될 정도로 미국 사회에서 한국인의 저력이 평가받게 되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타국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것을 엊그제 총격사건을 보면서 실감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마사지업소를 대상으로 한 연쇄 총기난사 사건 피해자 중에 한국인 여성 4명이 포함됐다는 뉴스다. 코로나 19의 대유행 이후 미국사회에서 아시아계를 겨냥한 증오범죄가 급증하는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다.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제 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후보를 발표한 다음날이어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게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만 같았다. 용의자 로버트 애런 롱은 범행을 시인하면서도 인종적인 동기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번 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을 계기로 미국내 아시아계 인종차별 실태가 재조명 되고 있다. 아시아계 인사들을 비롯해 유명인사들은 개인 경험을 소개하며 미국내 반 아시아 폭력 규탄 목소리에 힘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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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의 이야기를 해 보자.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총 252만명은 넘어서 전체 인구 중 4.9%를 차지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하는 5%에 근접하는 중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피부색과 종교 등에 대한 편견없이 이들과 함께 살아 갈 준비는 되어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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