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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톺아보기] 대한민국 전세 문화,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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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윤 LH 주거안정연구센터장

진미윤 LH 주거안정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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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당연시 여겨졌던 것이 인생 과업이 되어 버렸다. 결혼, 출산, 전세가 그러한 것이 아닐까 한다. 때가 되면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생사였다. 작은 셋집에서 살림을 꾸려 차츰 집을 넓혀 가며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 대다수 중산층의 주거 행로였다. 세를 얻는 가구의 80%는 전세가 첫 집이었다. 한 지붕 세가족이어도 전세로 살기에 내일은 희망이 있었다. 전세는 당연한 것이었고 내집 마련시에 중요한 밑천이 되는 똘똘한 목돈 역할을 했다. 전세의 순기능인 주거 사다리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식은 외환위기 이전까지였다. 2000년대 초부터 반등하기 시작한 집값 영향이 전세가도 끌어올리며 재건축발 전세 대란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는 저금리 발 전세 파동을 낳았다. 전세의 월세화가 가시화되면서 2010년을 기점으로 전세보다 월세가 더 많아졌다. 전세 품귀 현상으로 전세가는 지칠 줄 모르고 오르며 집값에 육박했다. 이 틈을 타 전세의 또 다른 얼굴인 갭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집값의 10~20%로 전세 끼고 집을 사서 전세계약이 만료되면 전세금을 올리거나 집값이 오르면 그 차익을 취하는 투기가 가세한 것이다.

전세 100여년 역사에서 보자면, 전반 80여년 정도는 순기능을 했다면 후반 20여년은 역기능이 우세했다. 전세는 주기적으로 집값 곡선과 줄타기를 하며 주택시장의 가격 변동성을 키웠고, 갭투자의 불쏘시개였다. 억대에 이르는 전세보증금은 증여로 부의 대물림 수단이 되어 사회 불평등의 골을 더 깊게 패게 했다. 전세가 우리 사회에 주는 부담은 이제 너무나 과도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 부채 1,637조원의 절반이 집 때문에 생긴 부채이다. 지난 10년간 연간 평균 가구소득은 1000만원이 채 늘지 않았는데 1억원 넘게 오른 집값과 전세가는 고스란히 부채로 이어진 셈이다.


전세 문제의 본질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특정 정권이나 시점에 국한된 사안은 아니다. 정부의 적기 대응이나 정책 과오와 완전히 무관할 수는 없지만 이것이 본질은 아니다. 부동산 규제나 저금리 탓만 하기에는 문제를 너무 침소봉대하는 것 같다. 전세를 시장의 경제논리만으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세는 생활양식이자 정서적 산물로서의 주거 문화이다. 한국형이자 보편적 주거복지이다. 붙들고 싶고 놓치면 너무 섭섭하다. '월세가 뭐 어때'라고 한다면 상처가 된다. 월세보다는 전세로 사는 것은 주거 지위상 중간은 된다는 자존감이기도 하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한 때다. 전세 감소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니 시장에 항복할 것인지, 아니면 전세난의 본질이 지나치게 상업화된 오늘날의 주거 현실에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본권으로서의 주거 공익성을 살리기에 정부가 적극 나설 것인지를 말이다. 전세 시장은 실패했다. 하지만 정부 실패로는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탓, 정책탓, 시장탓만 해서는 갈등만 부추길 뿐 해법을 찾기 어렵다. 전세 문화를 지키고자 한다면 상업화된 영역을 공공의 영역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인지, 공공전세주택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공급해야 할 것인지, 강한 전세 선호도의 내면에는 내집 마련의 꿈이 있기에 이를 어떻게 이뤄줄 수 있을지도 반드시 아울러야 할 것이다.

지금의 전세난은 한순간에 급속도로 일어난 변동이 아니다. 오랜기간 동안 서서히 진행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부동산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에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한 계속 이어질 과정이다.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각고의 정책적 노력과 더불어 담대하고 용기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경제 논리보다 문화 논리가 이기는 대한민국이길 바란다.


진미윤 LH 주거안정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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