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영국에는 난로세(hearth tax)가 있었다. 부유한 가정에는 벽난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만든 세금이었다. 벽난로 하나당 2실링의 세금을 내도록 했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집에 일일이 들어가 벽난로를 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벽난로를 없애는 일도 생겼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영국의 왕위에 오른 윌리엄 3세는 벽난로를 대체할 세금을 고민하다 묘책을 생각해냈다. 이른바 창문세였다. 당시에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유리가 귀했다. 유리창은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또 부유한 사람일수록 창문이 많은 저택에 살기 때문에 만든 세금이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매우 황당하기 그지없으나 창문세는 나라를 바꿔가며 무려 150년 동안이나 중세 유럽 시대에 지속됐다.
창문세의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 영국에서는 창문의 수에 따라 세금을 매겼는데 사람들은 세금을 피하고자 아예 창문을 막아버렸다. 지금도 영국의 오래된 건물을 보면 창문이 막혀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프랑스에서는 창문의 폭을 세금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자 프랑스인들은 건물에 폭이 좁고 긴 창문을 달기 시작했다. 이는 지금도 프랑스식 건물의 특징으로 남아있다.
영국, 프랑스 등 중세 유럽에서 난로세, 창문세를 만든 것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막대한 재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람들한테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위정자들이 머리를 짜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피해는 가난한 사람들한테 돌아갔다. 부자들이야 애초부터 세금을 얼마 내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세금을 낼 형편이 안되는 평민들은 창문을 없애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이들은 볕이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집에서 살아야 했고 환기가 되지 않다보니 전염병에 취약했다. 이렇듯 조세는 때론 엉뚱한 피해자를 만든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이 증세론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전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나눠주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전 국민에게 매달 10만원씩만 준다해도 연간 60조원, 월 30만원을 지급할 경우 180조원이란 어마어마한 예산이 필요하다. 기존 복지 지출을 조정해도 이 막대한 돈을 조달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증세론까지 연결된다. 증세로도 부족하면 탄소세, 로봇세, 데이터세, 국토보유세 등 새로운 세목을 만들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 중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이 로봇세다. 로봇이 등장하면서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았으니 로봇에 세금을 부과해 기본소득제의 재원으로 삼자는 것이 골자다. 찬성론자들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도 2017년 로봇세를 주창했다며 이를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유럽의회는 치열한 논의 끝에 로봇세 도입을 채택하지 않았다.
로봇세는 어디까지를 로봇으로 볼 것이며 어느 항목에 세금을 부과해야 할지 복잡한 이슈들을 해결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로봇세는 혁신을 저해할 우려가 크다. 로봇세는 결국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연구하는 기업과 연구자, 결국은 소비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같이 언급되고 있는 데이터세도 마찬가지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상장 첫날 70% 폭등 "엔비디아 독주 끝나나"…AI ...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4차 산업혁명이 몇 년 앞당겨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잘 살려서 경제적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있다. 전 세계 어느 국가도 도입하지 않는 로봇세를 들여와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뒤처지기를 바라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기본소득 지급을 위해 로봇세까지 꺼내든 정치권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