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늘] 온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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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을 지나며 공기가 차가워졌다. 서울에서는 오랜만에 기온이 영하로 깊숙이 떨어졌다. '수은주가 곤두박질쳤다'라고 써도 되겠다. 이번 겨울에는 추운 날이 많지 않았으니까. 온도가 갑자기 떨어지면 추위가 더 심하게 느껴진다. 지난해에서 올해에 이르는 겨울은 이렇게 체면치레를 하고 넘어갈 모양이다.


설날과 입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2월 초순은 원래 얕보기 어려운 시간이다. 정수리가 저릴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1980년 오늘은 서울의 기온이 영하 12도, 수원은 영하 19도까지 떨어졌다. 초ㆍ중ㆍ고등학교가 개학을 미뤘다. 그해에는 곤두박질친 수은주가 고개를 들지 못한 것이다.

수은온도계는 온도 변화에 따른 부피 팽창이 알코올온도계보다 일정해 온도 측정에 알맞다. 가장 정확한 수은온도계는 독일의 화학자 에른스트 오토 베크만이 발명한 '베크만온도계'다. 100분의 1도까지 측정할 수 있다. 끓는점이나 응고점 변화, 발열량, 유기화합물의 분자량 등을 측정하는 데 쓰인다.


온도계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593년에 처음 만들었다. 그는 온도에 따라 공기의 부피가 변하는 원리를 이용했다. 이 온도계는 기압의 영향을 받아 부정확했다. 우리가 사용하는 온도 단위는 화씨(℉)와 섭씨(℃)다. 화씨온도계는 1714년에 다니엘 가브리엘 파렌하이트가, 섭씨온도계는 1742년에 안데르스 셀시우스가 만들었다.

이번 겨울이 시작될 무렵, 나는 새로 낸 시집을 부치기 위해 봉투와 테이프 등 필요한 물건을 사러 문방구에 갔다가 온도계를 발견했다. 외국에서 수입한 알코올온도계로, 만듦새가 조잡했다. 그러나 온도계를 보는 순간 뜨거운 기운이 가슴에 사무쳤다. 아버지. 온도계가 아버지를 가리키는 객관상관물로 내 가슴속 깊은 자리에 걸려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짧은 생애의 대부분을 건축업자로 살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직업은 건축가였어야 마땅하다. 창조력, 도전정신, 감수성, 호기심, 최고를 향한 갈망을 비롯한 여러 이유 때문에. 그러나 아버지는 예술가가 아니라 기술인의 길을 기꺼이 걸으며 가족을 부양했다. 사무실보다는 시멘트 가루가 날리는 현장을 더 사랑했다.


서울의 신설동에 사무실을 둔 아버지의 회사는 상업용 다층 건물을 설계하고 지어 돈을 벌었던 것 같다. 그러나 가정용 건물도 적지 않게 지었다. 이 작은 건물들은 아버지의 즐거움에 기여했을 것이다. 물론 가정집도 다 지으면 판매했다. 아버지가 짓는 건물은 늘 특별했다. 가정용 건물을 지을 때도 개성을 발휘해 1970년대에 유행하던 집들과 차별을 뒀다.


어떤 집은 에너지를 공급하는 건물과 공급받는 건물을 분리해 지었다. 3층 건물의 내부에 나선계단을 설치해 동선(動線)을 절약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집을 다 지은 다음 거실에 온도계를 가져다 걸었다. 아버지가 온도계를 걸면, 그 집은 완성됐다는 뜻이었다. 아버지의 완성은 누군가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의미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지은 집들은 아직도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여러분이 꽤 오래된 집을 샀는데 그 집이 이문동, 석관동, 장위동, 면목동, 중곡동, 상봉동 중 한 곳에 있고 그 집 거실에 아주 오래된 온도계가 걸려 있다면, 확률이 낮기는 하지만 내 아버지의 작품일 수 있다.


나는 그날 문방구에서 발견한 온도계를 사다가 연구실 벽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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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시인·한국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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