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이어진 북미 신경전 어떻게 풀었나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북한과 미국은 70년 동안 '화해와 갈등'을 반복해왔다. 내년에는 북ㆍ미 정상회담과 실무회담으로 이어진 1년 반 동안의 '비핵화 여정'을 마치고 다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상황으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내년에 예상되는 군사적 긴장감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북ㆍ미가 처음 만난것은 1953년 7월 27일 휴전 다음 해다. 1954년 제네바회담에서다. 이 자리에서 두 나라의 적대감은 극에 달했다. 대화의 결과물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었다. 시간이 지나 미국과 대화가 절실했던 김일성 주석은 1973년 중국을 통해 회담을 요청했다. 미국의 주중(駐中) 연락대표부 알프레드 젠킨스와 주중 북한대사 이재필의 첫 접촉이 이뤄졌다. 효과는 나타났다. 북한은 세계보건기구(WHO)에 가입했고 1985년 12월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했다. 미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에 평화모드를 제안했다. 성공적인 올림픽을 위해 대북 식량은 물론 '팀스피리트' 군사 훈련을 일시중단하기로 했다.
하지만 평화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북한이 1993년 NPT 탈퇴를 선언하자 한반도는 다시 얼어붙었다. '제1차 핵위기' 사태로 이어졌다.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개발해 사용하려 한다면 북한의 최후가 될 것"이라며 군사행동까지 경고했다. 북한도 맞섰다. '서울 불바다' 발언을 쏟아냈다. 이때 나온 것이 바로 '벼랑 끝 전술'이다. 위기를 돌파해 낸 것은 바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다. 1994년 6월 판문점을 넘어 김 주석과 담판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북ㆍ미 제네바 기본 합의서'가 체결됐다.
2002년 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대화모드는 막을 내렸다. 북한은 핵동결 해제를 선언하고 2006년 핵실험을 강행했다. 국제사회도 움직였다. 즉시 대북제재결의(1718호)를 채택했다.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남ㆍ북ㆍ미 3자 평화협정을 맺자"고 권유를 했다. 미국은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했다. 하지만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사찰과 관련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감사 요원을 추방했고 6차 핵실험까지 이어갔다.
화해와 갈등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꼬마 로켓맨', '미치광이', '노망난 늙은이', '늙다리 전쟁미치광이' 등 서로를 조롱하고 모욕했던 2017년으로 되돌아가는 듯한 모습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카드를 3가지로 압축하고 있다. 군사적 대응, 저강도 군사적 압박과 협상의 병행, 능동적 봉쇄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화염은 군사적 옵션이다. 하지만 선제공격은 '침략전쟁'으로 매도당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군사적 압박의 수위를 높이면서 북한과 물밑접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제재해제를 제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한반도에 미군의 전략자산을 강화시켜 북한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나갈 것이란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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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관계자는 "2017년 당시 미군은 전면전을 포함한 다양한 대북(對北) 군사 옵션을 검토했다"며 "비핵화 협상이 완전히 결렬할 경우 미국은 경제 제재를 집행한다는 명목으로 북한의 해상을 봉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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