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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의 경제읽기] 기업 불평등 '대기업 자본 + 벤처 기술력' 시너지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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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상장사 전체 영업익
상위 10%가 60% 차지
작년엔 반도체 2개사가 45%

시장, 투자 적정성 판단
정부, 기술개발 재정 투입
기업, 유망기업 적극 투자
'3박자' 맞아야 경제 탄탄해져

[이종우의 경제읽기] 기업 불평등 '대기업 자본 + 벤처 기술력' 시너지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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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불평등한 세상',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50% 이상을 차지', '국내 예금액에서 상위 1% 계좌가 차지하는 비중은 45%'.


불평등 문제를 다룰 때 많이 나오는 얘기들이다. 그동안 불평등 문제는 주로 개인이나 가계가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개인 말고 기업의 불평등은 없었을까?

미국 포브스(Forbes)지에 따르면 1975년에는 109개 기업이 전 세계 기업이익의 50%를 차지했던 반면 2015년에는 그 숫자가 30개로 줄었다. 40년간 소수 기업군의 이익이 더 크게 증가한 것이다. 적은 숫자의 기업이 많은 이익을 가져가다 보니 다른 기업의 사정이 어려워졌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이는 반만 맞는 얘기다.


전체 이익에서 나머지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었을망정 부도가 나거나 재무상황이 나빠지는 일은 줄었다. 이익이 늘어나서라기보다는 이 기업들이 살기 위해 투자를 축소해 현금 보유를 늘렸기 때문이다.


미국 S&P500 지수에 속하는 기업 중 시가총액 상위 200~500위에 해당하는 기업들, 우리로 따지면 중소형 상장사의 잉여 현금이 5년 전보다 44% 증가한 게 이런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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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경제는 성장이 낮아졌다. 만약 온라인 거래가 없었다면 아마존이 지금같이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 곳곳에 부동산을 매입해 백화점을 지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여러 작은 기업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 투자 증가를 통해 성장률을 높였는데 지금은 그게 되지 않는다. 이 영향으로 기업의 생존 가능성은 높아졌을망정 성장성은 떨어졌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2000년에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에서 시가총액 상위 10%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60% 정도였다. 작년에는 해당 비율이 92%로 높아졌다. 특정 회사의 비중도 올라가 2013년에는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지난해에는 반도체 2개사가 전체 이익에서 45%를 차지했다. 이 결과 다른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투자 부진이 나타났다. 2015년 이후 5년간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의 평균 투자 증가율이 9.3%인 반면 21~200위까지는 1%에 지나지 않았다. 적정 수준의 이익과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한 중소 기업들이 투자를 꺼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수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다수 기업의 부도 가능성이 오히려 낮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빌린 돈의 이자를 갚을 수 있는지 여부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이자 비용)이 있다. 시가총액 상위 20개 기업의 해당 지표는 2015년 12배에서 올해 8배로 낮아졌다. 반면 200위까지는 3배에서 5배로 높아졌다. 금리가 떨어져 갚아야 할 이자가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미래 성장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투자보다는 생존에 최우선을 둔 기업이 돈이 생길 때마다 부채를 갚는 데 주력한 결과다.


앞으로 상황이 개선될 수 있을까? 기업 경영이 점점 더 보수적이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희박하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기업도 생존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이런 모습을 탓할 수는 없다. 앉아서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적극적 대응을 통해 기업 간 불평등 해소에 나서야 한다.


지난 10년 사이 기업 간 관계가 획기적으로 변한 사례가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2013년 아모레퍼시픽의 시가총액이 국내 모든 백화점의 시가총액 합친 것보다 커진 경우다.


두 번째는 작년 바이오회사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이 현대차를 넘어 3위까지 올라간 경우다. 둘 다 소수 기업이 가지고 있던 아성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장착한 기업에 의해 무너진 케이스다. 처음 역전현상이 벌어졌을 때만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 보면 당연하게 여긴다. 어떤 기업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면 시장이 그 동력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를 위해서는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 시장,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주는 통로이면서 투자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곳이다. 2000년 IT붐 때 자금을 대규모로 공급해줬던 경험이 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세련된 대응이 이뤄지고 있다. 2000년은 코스닥시장이 출범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이고 시장도 성장성으로 기업을 나눠 본 경험이 없었다. 시행착오가 불가피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재작년 바이오붐이 있었을 때 시장은 신약 개발 가능성이 높은 곳과 낮은 곳을 나눠 차별적으로 자금을 공급했다. 이 결과 과잉투자를 막고 필요한 곳에 자금이 공급될 수 있었다. 시장의 능력이 진일보했지만 기술 발전 속도는 그보다 더 빠르다. 시장의 판별력을 더 높이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내년에 정부가 대규모 재정 투입을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사용처다. 그동안 재정 정책에 공감하는 사람도 투입이 미래 지향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 예산 증가가 현재 소비에 필요하다면 새로운 기술 개발 지원은 미래 성장을 위해 필요하다. 기술의 미래가 불분명할 때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통해 개발에 앞장선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지금 우리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산업들도 많은 경우 이 과정을 거쳐왔다.


핵심적 역할을 해야 할 곳은 당연히 기업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 우리 기업은 과거 투자에 의지해 성장해왔다. 이 결과 중후장대형 산업의 이익이 늘어났는데 지난 몇 년 사이 영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기업도 자기만의 DNA를 가지고 있다. 어제까지 대규모 장치 산업을 이용해 생산해오던 기업이 오늘 갑자기 소규모 성장 기술에 몰입할 수는 없다. 그 간극을 자본투자가 메워야 한다. 대기업들이 축적해 놓은 자금을 기술력 있는 작은 기업에 투자해 기술 개발에 성공할 경우 해당 기업뿐 아니라 경제 전체에도 도움이 된다.


대기업이 직접 투자했거나 사내 벤처로 키운 기업들이 우리 주식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기업의 불평등은 현재 기술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부단히 새로운 걸 찾아나서는 노력만이 그 차이를 메울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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