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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무이야기] 해외 금융계좌 신고와 과유불급(過猶不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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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에서 도입된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가 어언 10년이 다 되어간다. 국세청 통계자료 기준 2011년 신고 인원 525명, 신고 금액 11조5000억원이던 것이 2018년에는 신고 인원 1287명, 신고 금액 66조4000억원으로 인원은 갑절, 액수는 여섯 곱절로 급증했다. 신고 대상 자산의 비율로 보면 예ㆍ적금 등 현금성 자산이 41조원으로 약 62%를, 주식이 20조8000억원으로 약 31%를, 파생상품 및 그 밖의 자산이 4조6000억원으로 약 7%를 차지하는 형세다. 해외 계좌 등에 예치된 금액을 기준으로 할 때 개인은 미국, 싱가포르, 일본, 법인은 일본, 중국, 홍콩이 수위권을 유지했다. 한편 신고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2011년부터 현재까지 324명에게 946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됐고, 38명이 형사 고발됐으며, 6명은 그 명단이 공개되기도 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신고 기준 금액이 기존의 10억원에서 5억원으로 하향됐으므로 신고 인원 및 신고 금액이 또 한 번 크게 증가하는 전환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거주자 및 내국 법인이 2018년에 보유한 각 해외 금융계좌 잔액 합계가 매월 말일 중 어느 하루라도 5억원을 넘었다면 올해 6월1일부터 7월1일까지 그 계좌 내역을 신고해야 한다. 해외 금융계좌란 해외 금융회사에 금융 거래를 위해 개설한 계좌를 말하며, 그 계좌에 보유한 현금, 주식, 채권, 집합투자증권, 보험상품 등 모든 금융 자산이 신고 대상이 된다. 차명 계좌의 경우 명의자와 실소유자 모두 신고 의무가 있고, 해외 특수목적법인(SPC)이 보유한 계좌의 실질 귀속자가 내국 법인인 경우 그 내국 법인이 신고 의무를 진다. 2018년 신고한 계좌의 잔액에 변동이 없더라도 2019년에 다시 신고해야 한다. 신고 금액과 관련해 그 자금 출처에 대한 세무조사가 수반될 수 있다. 해외 금융계좌를 통해 보유하지 아니한 해외 자산, 예컨대 해외에 직접 투자해 설립한 해외 현지 법인에서 받은 배당 등은 해외 금융계좌 신고 대상이 아니지만, 해당 소득은 여전히 종합소득세 또는 법인세 신고 대상이 된다는 점도 주의를 요한다. 미신고자로 확인될 경우 미신고 금액의 최대 20%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만 아니라 그 미신고 금액이 50억원을 넘으면 형사 고발 및 명단 공개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또한 과세 관청은 '중요 자료 제보자에 대한 포상금 지급제도' 및 '스위스, 싱가포르 등 79개 국가와의 금융 정보 자동 교환 협정 체결'이라는 씨실과 날실을 통해 미신고 혐의자에 대한 사후 검증 절차를 어느 때보다 촘촘하게 갖추고 있다.

이러한 해외 금융계좌 신고 의무의 연원은 태평양 너머에 있는 미국의 해외금융계좌신고제도(FBARㆍReport of Foreign Bank and Financial Accounts)다. 미국은 1977년 해외로의 자금 유출 및 국내로의 반입을 감시할 목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를 도입했다. 전년도 기준 연중 한 번이라도 해외 계좌의 잔고가 합산해 1만달러를 초과하는 경우 납세자에게 신고 의무가 부과된다. 과태료는 원칙적으로 미신고 계좌당 1만달러가 부과된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10만달러 또는 계좌 잔고의 50% 중 더 큰 금액이 부과되고,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미국에서는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자들에 대한 구제를 위해 한시적 사면 프로그램인 역외자산 자진신고 프로그램(Offshore Voluntary Disclosure Program), 간편 자진신고 제도(Streamlined Filing Compliance Procedures) 등을 수시로 시행하고 있다. 영국도 미국과 대동소이한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를 운영하는데, 가산세 감경 혜택을 주는 한시적 자진신고 프로그램 또는 신고 기간을 병행했다. 일본의 국외재산조서제출제도는 우리나라보다 한 발 늦은 2014년 1월1일부터 시행됐다. 5000만엔 이상의 해외 재산을 보유한 경우에 매해 보고 의무를 부과했다. 일본의 제도는 토지, 건물 등 국외에 있는 모든 자산을 신고 대상으로 하는 점이 특징적이다.


해외 금융계좌 신고 제도가 금융 정보 교환 제도와 함께 불법적인 역외탈세를 추적하고 공평과세의 이념을 달성하는 쌍두마차의 역할을 한 공력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운영 10주년을 앞두고 있는 만큼 그간 제기된 비판들을 경청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데도 힘쓰는 성찰과 피드백의 지혜가 필요한 듯싶다. 특히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부죄(自己負罪) 거절이라는 '기본권'과 관련돼 있다는 점에서 그 운용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옛 도로교통법 제50조 제2항이 교통사고 신고 의무 규정을 운전자의 형사 책임에 관련되는 사항에까지 확대 적용할 경우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또한 헌법상 어떠한 법률의 입법 목적이 정당하다고 할지라도, 국민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그 불이행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의 범위는 최소한도에 그쳐야 한다. 그러나 해외 금융계좌 신고 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납세자는 미신고 과태료, 소명불응 과태료, 형사 고발 및 명단 공개라는 삼중, 사중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공평과세라는 이념을 추구하고 조세탈루 행위를 적발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무 당국의 역할이다. 납세자에게 포괄적인 신고 의무를 부과할 뿐만 아니라 신고 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법체계상 성격이 다른 과태료와 형사처벌을 병과하기까지 하는 것은 본인의 죄를 자복(自服)하라는 판관 포청천과 비슷한 형국이다. 납세자에 대한 과도한 신고 의무 부과는 주객전도의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의 예와 같이 납세자의 자진신고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고, 우리나라에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도입된 특례자진신고제도와 같은 한시적 프로그램도 상설화할 필요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수정 신고 또는 기한 후 신고를 한 자와 같이 비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납세자에 대해서는 과태료 감경의 혜택을 폭넓게 부여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그러한 면에서 2015년 2월3일 이후분부터 과태료 감경률을 상향한 법 개정은 긍정적이다. 또한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등 신고 의무를 간과하기 쉬운 납세자들에게는 개별 안내를 하는 등 납세자 친화적으로 운영 방식을 보완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형평(衡平)한 해외 금융계좌 신고제도가 공평(公平)한 과세를 뒷받침하기를 소망한다.

백제흠 김앤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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