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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토지매매 문서’ 대전시립박물관서 전시

최종수정 2019.05.31 09:34 기사입력 2019.05.3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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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실제 작성된 토지매매 문서(좌)와 현재 사용되고 있는 토지매매 양식 자료. 대전시립박물관 제공

조선시대에 실제 작성된 토지매매 문서(좌)와 현재 사용되고 있는 토지매매 양식 자료. 대전시립박물관 제공

[아시아경제(대전) 정일웅 기자] 조선시대 토지매매 문서가 대중에 공개된다.


대전시립박물관은 ‘이달(6월)의 문화재’로 조선시대 토지매매 문서 두 점을 선정, 내달 1일~30일 박물관 내 상설전시실에 관련 문서를 전시한다고 31일 밝혔다.


전시된 문서 중 하나인 장괴볼 토지문기는 을미(乙未)년 7월 16일 박정용이 27냥(兩) 5전(?)에 자신의 논을 장괴볼의 논과 바꿔 방매하는 과정에서 작성됐으며 이생원댁 토지 문기는 1881년(고종 18년) 전복업이 충남 보령시 청소면 소석호 소재의 초가와 밭 등을 60냥에 이생원 댁에 방매하면서 작성됐다.


시립박물관은 이들 토지매매 문서 외에도 당대에 쓰이던 공문서식을 엮어 놓은 편람 ‘유서필지(儒胥必知)’와 현재의 매매 관련 문서인 매매계약서 및 부동산거래계약 신고필증 서식을 함께 전시한다.


유서필지는 토지매매 문서의 첫 줄에 연도, 월, 일자와 매수인의 성명을 표기하고 본문에 매도사유, 토지의 소재지, 면적과 매매 가격 등을 기재토록 안내한다. 또 문서의 가장 아래에는 매도인과 증인, 필집의 성명을 쓴 후 수결하도록 했다.

전시는 토지매매 계약에 관한 조선시대와 현재의 문서를 한 공간에서 동시에 비교할 수 있게 한다는 점과 시대 변천에 따른 매매 문서의 변화 및 사회상을 알 수 있게 하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한편 시립박물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개인 간 토지매매가 허용된 것은 15세기 이후로 이 무렵부터 사유재산으로서의 토지소유권이 실제 인정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당시 토지 소유권을 지닌 양반은 매매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노비를 통해 토지매매가 진행됐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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